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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곰 Jun 17. 2023

[순간의, 스위스 #5] 피르스트와 융프라우



사실은, 이 여행의 시작에는 융프라우가 있었다. 스무살, 기차 침대칸에 의지해 겨우겨우 용기 내 도착했던 스위스에서, 남은 돈을 세가며 꼭 하나만 갈 수 있었던 알프스의 봉우리. 그 중에서도 내가 선택했던 건 융프라우였다. 물론 오늘처럼 그 날도 융프라우는 내 눈 앞에 장관 대신 안개를 내어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융프라우를 오르 내리며 마주쳤던 수많은 고요와 풍경들이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숨쉬었기 때문에, 나는 그 시절의 자유와, 아니 그 시절 내가 가졌던 수많은 가능성들과 다시 만나고 싶어 스위스를 택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오늘 하루 나를 가장 행복하게 했던 건, 다시 돌아 첫사랑을 만나는 기분을 느끼게 했던 융프라우보다는, 소중한 친구와 새로운 추억을 써내려간 피르스트에서의 시간들이었다. 고소공포가 있어 놀이기구도 잘 못타는 나지만, 밑이 훤히 보이는 해발 2,000m가 넘는 협곡 사이를 함께 걷고, 두려움 대신 감동을 느끼며 순간을 온전히 살아낸 그 시간들. 피르스트가 내게 준 건, 그저 멀리 보이는 설산의 비경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살아있음을 가장 잘 느끼는 방법이 무엇인지 삶으로 가르쳐 준 것이었다.



그리고, 함께 인생과 풍경에 경탄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가! 곤돌라를 타고 가며 마주쳤던 풍경, 곳곳에서 음악처럼 들려오던 워낭소리, 장난꾸러기 어린아이들이 된 양 노래를 부르고 환호성을 지르며 카트를 타고 피르스트를 내려오던 순간 순간의 감동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우리의 삶처럼 돌고 돌아 서로의 삶이 지칠 때 언제건 다시 서로를 삶의 귀함 속으로 다시 한 발 내딛는 용기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50이 되어서도 60이 되어서도 우리는 이날의 우리를 기억하며 또다시 장난꾸러기 아이들처럼 웃고 떠들겠지.




첫사랑을 떨치고 다시 내 삶 위에 두 다리로 서듯, 오늘 하루를 통해 보영이와 내 인생 속의 스위스를 다시 쓴다. 피르스트에서의 풍경들, 시간, 함께 나눈 이야기, 우리가 남긴 사진들 모두 결국 우리의 마음 속에서 어떤 의미의 스위스들을 다시 써주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또 언젠가, 내 삶이 다시 어려움에 빠지는 순간에, 내 마음속 스위스를 찾아 다시 한 번 이곳에 돌아올 것이다. 그 날에 내 마음에 새길, 새로운 삶에 대한 경탄을 미리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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