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스위스 #5] 피르스트와 융프라우

by 람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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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이 여행의 시작에는 융프라우가 있었다. 스무살, 기차 침대칸에 의지해 겨우겨우 용기 내 도착했던 스위스에서, 남은 돈을 세가며 꼭 하나만 갈 수 있었던 알프스의 봉우리. 그 중에서도 내가 선택했던 건 융프라우였다. 물론 오늘처럼 그 날도 융프라우는 내 눈 앞에 장관 대신 안개를 내어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융프라우를 오르 내리며 마주쳤던 수많은 고요와 풍경들이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숨쉬었기 때문에, 나는 그 시절의 자유와, 아니 그 시절 내가 가졌던 수많은 가능성들과 다시 만나고 싶어 스위스를 택했던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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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작, 오늘 하루 나를 가장 행복하게 했던 건, 다시 돌아 첫사랑을 만나는 기분을 느끼게 했던 융프라우보다는, 소중한 친구와 새로운 추억을 써내려간 피르스트에서의 시간들이었다. 고소공포가 있어 놀이기구도 잘 못타는 나지만, 밑이 훤히 보이는 해발 2,000m가 넘는 협곡 사이를 함께 걷고, 두려움 대신 감동을 느끼며 순간을 온전히 살아낸 그 시간들. 피르스트가 내게 준 건, 그저 멀리 보이는 설산의 비경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살아있음을 가장 잘 느끼는 방법이 무엇인지 삶으로 가르쳐 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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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함께 인생과 풍경에 경탄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가! 곤돌라를 타고 가며 마주쳤던 풍경, 곳곳에서 음악처럼 들려오던 워낭소리, 장난꾸러기 어린아이들이 된 양 노래를 부르고 환호성을 지르며 카트를 타고 피르스트를 내려오던 순간 순간의 감동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우리의 삶처럼 돌고 돌아 서로의 삶이 지칠 때 언제건 다시 서로를 삶의 귀함 속으로 다시 한 발 내딛는 용기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50이 되어서도 60이 되어서도 우리는 이날의 우리를 기억하며 또다시 장난꾸러기 아이들처럼 웃고 떠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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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을 떨치고 다시 내 삶 위에 두 다리로 서듯, 오늘 하루를 통해 보영이와 내 인생 속의 스위스를 다시 쓴다. 피르스트에서의 풍경들, 시간, 함께 나눈 이야기, 우리가 남긴 사진들 모두 결국 우리의 마음 속에서 어떤 의미의 스위스들을 다시 써주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또 언젠가, 내 삶이 다시 어려움에 빠지는 순간에, 내 마음속 스위스를 찾아 다시 한 번 이곳에 돌아올 것이다. 그 날에 내 마음에 새길, 새로운 삶에 대한 경탄을 미리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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