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람곰 Jun 17. 2023

[순간의, 스위스 #1] 하이디 마을, 마이엔펠트




마이엔펠트에 가는 내내 행복했다. 기차가 지나는 마을마을들 모두 마치 동화 속 풍경에 있는 듯 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기 때문이다. 꿈꿔왔던 풍광들이 이어지자 마음이 들뜨고 몸이 날아갈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이엔펠트에 도착한 뒤에도 한참을 이 설렘이 이어졌다. 너르게 펼쳐진 포도밭, 그리고 그 뒤엔 그림처럼 걸린 만년설을 품은 알프스의 봉우리들. 아!내가 늘 바라던, 스위스의 풍광!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더욱 설레게 했다.



그러나 문제는 ’묘한 설렘‘, 항상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 설렘 이란 것. 설렘 같은 미묘한 감정들은 때론 삶을 박차고 나갈 동인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완성되지 못한 로켓처럼 제멋대로 날아갔다 갑자기 멈춰버리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멋대로 설레버린 덕에 나는 갑자기 2시간 코스의 언덕 등반을 하기로 멋대로(?) 결정해 버렸고, 헉헉대며 아침부터 땀을 비오듯 흘리며 한참을 오르고 나니 으슬으슬 추위가 몰려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글 지도만 믿고 포장되지 않은 오솔길을 선택한 덕에 신발은 진흙 투성이, 마음은 걱정 투성이에 이르게 되었다.


(마음이 왜 걱정 투성이에 이르게 되었냐면 불안 트리거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약을 멈추고 나서 잘 컨트롤 하고 있었는데 갑다기 숲실을 거닐다보니 온갖 벌레 등이 유발하는 풀숲에서 걸릴 수 있는 모든 병에 대한 불안이 한꺼번에 밀려와 한참 힘들었다)



일이 여기에 이르자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기왕 여기까지 올라온 김에 모든 위험들을 뚫고 더 위로 오를것이냐, 아니면 더이상 나를 괴롭히지말고 다른 생각에 집중하며 길을 돌아 내려갈 것이냐. 그 순간 백만가지 고민이 오갔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하산.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리고 왠지 누군가에게 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택이 조금 더 긴 시간 후의 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후련히 산을 내려오는 길, 애인과 통화를 하며 주의를 돌리고 나니 이제 나를 짓누르던 불안들이 점점 내 목에서 손을 떼는 듯 했다. 산을 내려와 커피 한 잔을 시키고 달콤한 케이크에 집중하다보니 시간이 흘렀고, 그러자 가빠진 내 숨도 동시에 잦아들었다.




생각해보면 내 인생이 늘 이런식의 쳇바퀴를 돌고 있는건 아닐까. 설레서 뛰어들었다 몸도 마음도 지치고 또다시 후회하지만 다시 설렐 날을 기다리는 삶. 그러나 조금만 더, 대신 내가 완전히 소진되지 않을 만큼만을 내 손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이 쳇바퀴가 그리는 동심원이 조금씩은 커지지 않을까. 그리하여 오늘 하루는 나의 이 선택을 배운다. 설렘보다, 성취보다 더욱 중요한 오래도록 나다움을 기억하며.





이전 01화 [순간의, 스위스] 프롤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