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스위스 #1] 하이디 마을, 마이엔펠트

by 람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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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엔펠트에 가는 내내 행복했다. 기차가 지나는 마을마을들 모두 마치 동화 속 풍경에 있는 듯 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기 때문이다. 꿈꿔왔던 풍광들이 이어지자 마음이 들뜨고 몸이 날아갈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이엔펠트에 도착한 뒤에도 한참을 이 설렘이 이어졌다. 너르게 펼쳐진 포도밭, 그리고 그 뒤엔 그림처럼 걸린 만년설을 품은 알프스의 봉우리들. 아!내가 늘 바라던, 스위스의 풍광!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더욱 설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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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는 ’묘한 설렘‘, 항상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 설렘 이란 것. 설렘 같은 미묘한 감정들은 때론 삶을 박차고 나갈 동인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완성되지 못한 로켓처럼 제멋대로 날아갔다 갑자기 멈춰버리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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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멋대로 설레버린 덕에 나는 갑자기 2시간 코스의 언덕 등반을 하기로 멋대로(?) 결정해 버렸고, 헉헉대며 아침부터 땀을 비오듯 흘리며 한참을 오르고 나니 으슬으슬 추위가 몰려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글 지도만 믿고 포장되지 않은 오솔길을 선택한 덕에 신발은 진흙 투성이, 마음은 걱정 투성이에 이르게 되었다.


(마음이 왜 걱정 투성이에 이르게 되었냐면 불안 트리거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약을 멈추고 나서 잘 컨트롤 하고 있었는데 갑다기 숲실을 거닐다보니 온갖 벌레 등이 유발하는 풀숲에서 걸릴 수 있는 모든 병에 대한 불안이 한꺼번에 밀려와 한참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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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여기에 이르자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기왕 여기까지 올라온 김에 모든 위험들을 뚫고 더 위로 오를것이냐, 아니면 더이상 나를 괴롭히지말고 다른 생각에 집중하며 길을 돌아 내려갈 것이냐. 그 순간 백만가지 고민이 오갔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하산.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리고 왠지 누군가에게 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택이 조금 더 긴 시간 후의 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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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후련히 산을 내려오는 길, 애인과 통화를 하며 주의를 돌리고 나니 이제 나를 짓누르던 불안들이 점점 내 목에서 손을 떼는 듯 했다. 산을 내려와 커피 한 잔을 시키고 달콤한 케이크에 집중하다보니 시간이 흘렀고, 그러자 가빠진 내 숨도 동시에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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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내 인생이 늘 이런식의 쳇바퀴를 돌고 있는건 아닐까. 설레서 뛰어들었다 몸도 마음도 지치고 또다시 후회하지만 다시 설렐 날을 기다리는 삶. 그러나 조금만 더, 대신 내가 완전히 소진되지 않을 만큼만을 내 손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이 쳇바퀴가 그리는 동심원이 조금씩은 커지지 않을까. 그리하여 오늘 하루는 나의 이 선택을 배운다. 설렘보다, 성취보다 더욱 중요한 오래도록 나다움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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