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스위스 #8] 불행은 흐르는대로

by 람곰


생각해보면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불행을 불행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불행에 얽힌 수많은 자책들 - 왜 이런 일을 피하지 못했지? 대비하려 노력하지 않았지? 나는 왜 이렇지? - 이 항상 ‘미래지향’이란 이름 안에 내 안에서 합리화 되어 왔고, 불행을 웃어 넘기는 건 어쩐지 좀 바보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대체로 불행을 피하려 전전긍긍하며 살다보니 조금씩 조금씩 나는 작아지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불행을 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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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의 ‘작은 불행’들을 웃어 넘기는 내가 스스로 놀라웠다. 기차 선로에 문제가 생겨 갑자기 열차에 탈 수 없게 됐을 때도, 덕분에 작은 버스에 낑겨 여러번 환승을 거쳐 목적지에 뒤늦게 다다르게 되었을 때도, 그 사건 자체를 중립적으로 생각하고 외려 별 생각 없이 지나가는 일로 여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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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해야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전부 느슨한 여행이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파워J답게 여행을 떠나면 해야할 일 하고 싶은 일들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 퀘스트하듯 다니는 데 익숙해져있었는데, 큰 틀에서 보고 싶은 한두개 정도의 장소를 넉넉한 일정 안에 자유롭게 넣다 보니 내게도 여유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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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스위스 시스템 자체에 대한 믿음도 한 몫 하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처럼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먼저 어떻게든 앞으로 가지 않으면 손해를 보곘단 생각이 덜했기에 불안이 조금 잦아들었달까. 시스템이 불안정한 다른 나라들처럼 아무런 대안 없이 여행자를 내팽개치지 않을 거란 믿음도 나의 이 믿음에 한 몫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는 결국 개인의 불안에 영향을 미치고, 그 개인의 불안이 모여 다시 모두를 분주하게 만든다. 먼 곳에 돌아 나를 다시 보니, 태어나고 자라길 불안한 나지만 결국 어떤 환경에 놓이느냐에 따라 그 불안이 상쇄돼기도, 증폭되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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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 선 내 자리에선 나는 어떻게 덜 불안한 삶을, 아니, 불행 대신 행복을 바라보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마도 내 삶의 속도를 스스로 조율하는 일.


조금 느리더라도 생각대로. 스스로를 불안하게 만드는 시간과 공간에 나를 자주 던지기 보다, 나를 평온하게 만드는 이들과 장소 사이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기로 스스로와 약속해본다.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다짐하는 빛나는 작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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