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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곰 Jun 17. 2023

[순간의, 스위스 #10] 시옹성 가는 길



[시옹성 가는 길]





이른 아침부터 어떤 길을 걸을지 고민이 많았다. 하이킹 루트를 먼저 가려다보니 유람선을 탈 시간이 없고, 유람선을 타고 먼저 시옹성에 가자니 유람선 시간이 너무 늦어 하루를 허비하는 기분이 들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고민하다, 망설이는 시간에 그냥 조금씩 가까이 걸어보자는 심경으로 시옹성까지 가는 길을 홀로 걸었다. 40분 언저리면 도착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그저 앞만 보고 가리라 생각했던 내 예상과 달리, 시옹성까지 가는 길에서 자주 멈칫댈 수밖에 없었다. 평화로운 사람들, 잔잔한 호수, 어제 오후보다 더 가깝게 보이는 건너편 알프스 산맥의 풍경까지…




자주 멈추고 자주 찍고, 같은 풍경인 것 같지만 왠지 지금 이 곳을 벗어나면 영영 놓쳐버릴 것 같아서, 끊임없이 나는 멈추고 찍기를 반복한 시간. 어제 저녁엔 분명 너무 사람이 많아 멈춰서 혼자 찍을 수 없었던 길들도 전세낸 듯 홀로 삼각대를 세우고 찍을 수 있었다. 아! 분명한 자유와 행복이라니. 주말을 맞아 왔던 인파들이 대부분 집으로 향한 탓인지, 나의 오랜 평화는 시옹성에 이르기까지 꺾이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다. 눈 감으면 꽃, 흔들리는 나뭇잎, 백조의 푸덕이는 날갯짓소리… 마음에 모두 담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할 만큼 평화롭고 행복한 날의 느낌이었다.




도착한 시옹성에서의 시간도 좋았다. 실제 성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덕분에 당시의 생활상을 자세히 알 수 있는 점도 다 마음에 들었다. 오랜만에 하루가 잘 지나가는 기분이라 심지어 어색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물론 내려오다 벽에 머리를 부딪혔지만, 키때문에 자주 있는 일이라 그냥 웃어 넘겼다. 세상에 내가? 웃어 넘겼다고!)  그리고 성의 연회장은 지금도 누군가의 생일파티로 대여해주고 있다고 한다! 세상에! 60살 생일파티는 여기 빌려서 할 수 있으려나 하는 상상을 혼자 해보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인혜랑 보영이한테 60살 공동 생일파티 여기서 열자고 해야겠다!





시옹성에서 느긋이 오후를 보내고 나니 마음이 배부른 기분이었다. 더 무언가 넣지 않아도 좋다. 오늘은 이것 하나로 충분하다, 하고 마음을 슬며시 미뤄두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오랜만에 편안하고 즐거운 시작. 행복한 하루가 될 것 같은 예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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