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람곰 Jun 17. 2023

[순간의, 스위스 #9] 몽트뢰의 첫날



"merci"



독일어 억양에 이제 익숙해져가는구나 싶었던 차에 난데없이 곳곳에서 프랑스어가 들려온다. 프랑스의 대표 마카롱 브랜드 라 뒤레부터 시작해 프랑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상점인 fnac까지. 거리 곳곳에 걸린 프랑스어 간판과 프랑스 사람들의 말들 속에 레만 호수의 멋진 풍경 대신 생경한 느낌이 남는다. 설산에 둘러싸여 있다가 갑자기 탁 트인 프랑스의 휴양지로 순간이동 한 느낌이랄까. 같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이렇게 이질적인 순간과 마주할 수 있다니. 이게 바로 스위스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호텔 방도 스위트로 업그레이드되고, 여러모로 시작부터 기분좋은 출발을 하고 있지만, 온 신경이 예민한 편인 나는 갑자기 이국의 땅에 다시(?) 던져진 느낌에 갈피를 잡지 못한다. 분명 로맨틱 한 풍경의 이 곳에서 하고 싶은 일도 보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어쩐지 갑자기 혼자된 마음이 커져 바람이 시린 기분. 마음을 조금 다잡아보려 호텔을 나서 레만 호수가를 걸어본다.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말로 서로에게 말을 거는 사이, 나는 묵묵히 혼잣말로 내게 말을 걸어본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이 외로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혼자이기엔 너무나도 로맨틱한 풍경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숫가 너머의 만년설과 그림같은 알프스 산맥의 풍경부터, 새파랗다-고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파아란 호수의 물결 너머로 떠다니는 백조와 윤슬의 날갯짓. 그리고 이 모든것들 사이로 알아들을 순 없지만 달뜬 마음만은 느껴지는 모두의 언어들까지.



팔짱을 끼고 나란히 걷는 모두들 사이를 거닐며 한 팔엔 삼각대를 낀 나를 발견한다. 어쩐지 혼자 걷는 저 편의 한 사람을 보며 쓸쓸함이 느껴지는 건 역시 내 기분 탓이었겠지. 기분전환 겸 산책을 나갔다가 돌아와 방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본다. 로맨틱한 순간, 로맨틱하게 내려앉는 노을. 그리고 이 순간에 함께 웃고 울 사람이 곁에 없다는 아쉬움. 이 마음들이 저 멀리로 전해질까? 전해질 수 있다면 언젠가는 이곳에 우리 함께 올 수 있다면 좋겠다. 나도 저들처럼 가끔은 달뜬 마음으로 예쁜 풍경을 보고 싶으니까.




이전 09화 [순간의, 스위스 #8] 불행은 흐르는대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