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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곰 Jun 17. 2023

[순간의, 스위스 #8] 불행은 흐르는대로


생각해보면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불행을 불행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불행에 얽힌 수많은 자책들 - 왜 이런 일을 피하지 못했지? 대비하려 노력하지 않았지? 나는 왜 이렇지? - 이 항상 ‘미래지향’이란 이름 안에 내 안에서 합리화 되어 왔고, 불행을 웃어 넘기는 건 어쩐지 좀 바보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대체로 불행을 피하려 전전긍긍하며 살다보니 조금씩 조금씩 나는 작아지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불행을 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므로.



그래서 오늘의 ‘작은 불행’들을 웃어 넘기는 내가 스스로 놀라웠다. 기차 선로에 문제가 생겨 갑자기 열차에 탈 수 없게 됐을 때도, 덕분에 작은 버스에 낑겨 여러번 환승을 거쳐 목적지에 뒤늦게 다다르게 되었을 때도, 그 사건 자체를 중립적으로 생각하고 외려 별 생각 없이 지나가는 일로 여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해야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전부 느슨한 여행이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파워J답게 여행을 떠나면 해야할 일 하고 싶은 일들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 퀘스트하듯 다니는 데 익숙해져있었는데, 큰 틀에서 보고 싶은 한두개 정도의 장소를 넉넉한 일정 안에 자유롭게 넣다 보니 내게도 여유가 생긴 것이다.




또, 스위스 시스템 자체에 대한 믿음도 한 몫 하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처럼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먼저 어떻게든 앞으로 가지 않으면 손해를 보곘단 생각이 덜했기에 불안이 조금 잦아들었달까. 시스템이 불안정한 다른 나라들처럼 아무런 대안 없이 여행자를 내팽개치지 않을 거란 믿음도 나의 이 믿음에 한 몫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는 결국 개인의 불안에 영향을 미치고, 그 개인의 불안이 모여 다시 모두를 분주하게 만든다. 먼 곳에 돌아 나를 다시 보니, 태어나고 자라길 불안한 나지만 결국 어떤 환경에 놓이느냐에 따라 그 불안이 상쇄돼기도, 증폭되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돌아가 선 내 자리에선 나는 어떻게 덜 불안한 삶을, 아니, 불행 대신 행복을 바라보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마도 내 삶의 속도를 스스로 조율하는 일. 


조금 느리더라도 생각대로. 스스로를 불안하게 만드는 시간과 공간에 나를 자주 던지기 보다, 나를 평온하게 만드는 이들과 장소 사이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기로 스스로와 약속해본다.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다짐하는 빛나는 작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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