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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싼 Oct 21. 2024

칭찬 도장

미국에서의 첫 입상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칭찬에 인색하셨다. 한국에서 중학생 시절, 처음으로 큰 백일장 대회에서 시를 써서 상을 받았던 날. 아버지는 칭찬 대신 아버지의 친한 동료 교사가 심사위원이었다며, 그 영향이 없지 않았을 거란 말로 축하를 대신하셨던 분이었다. 전교 20등 안에 들고 좋아했던 때에도 여전히 수학 점수가 형편없다며 이 성적으로 인서울 대학이나 가겠냐고 언성을 높이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다. 미국 이민 온 지 햇수로 두 해가 다 되어 가던 어느 날. 한국에서 어머니마저 퇴직을 마치고 이젠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나 이렇게 네 가족 함께 미국에 살게 된 지 얼마 안 됐던 때였다. 어머니가 미국에 오시면 모든 게 좋아질 거라는 희망은 이미 보기 좋게 무너져버린 지 오래였다. 어머니 역시 미국에서 새로운 직장을 찾지 못하고 여러 번 좌절을 경험하며 아버지처럼 힘든 시기를 보내고 계셨다.


  하교 후 집 대문을 열었을 때, 부모님은 여느 때와 같이 식탁에 앉아 무료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계셨다. 또 한바탕 싸움이 있었던 걸까 눈치를 보며 슬며시 종이 한 장을 어머니 앞으로 내밀었다. '이게 뭔데?'하고 묻는 어머니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학교에서 상을 하나 받았다고 말했다. 시 작문 상이라고 하니 두 분 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가 영어로 쓴 시로 상을 받았다고?"


  예상치 못한 반색에 조금은 더 기운이 들어간 목소리로 상금 오백 불도 같이 받게 되었다고 하자 아버지는 영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상패랑 상금은 시상식 때 준대요. 레드먼드 타운센터라는 곳에 가서 낭송도 해야 한다더라고요."

 

  부모님은 많이 기뻐하셨다. 그렇게 좋아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언제였던지 까마득할 정도로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 날밤, 잠자리에서 건넛방 부모님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무척 뿌듯해하시는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원래 내가 문학적 감수성이 있다는 걸 일찍이 알아보셨다며, 내가 워낙 책 읽는 걸 좋아하니 잘 쓰는 거라고 칭찬하셨다. 비록 내게 직접 하신 말은 아니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어쩌면 아버지는 여태껏 내가 자만할까 봐 칭찬을 아끼셨던 걸지도 모른다며 지난날 속상했던 마음을 다독였다.






  미국에 이민 온 지 2년 차, 영어로 쓴 시로 상을 받은 것은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내게 그 상패는 미국 생활을 잘 견뎌냈고 영어 실력이 많이 성장했다는 칭찬 도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텅 비어 있던 삶에 새로운 활력과 목표를 불어넣어 주었다.


  교육구에서 받은 꽤 큰 규모의 상이었기에 영어 교사들 사이에서 내 이름이 각인되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조금씩 학교에서 내 존재감을 인정받기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카운셀러는 내게 영문학으로 유명한 몇몇 대학교를 추천해 주며 내년부터는 창작 문예 수업에 등록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겠다고 했다.


 이거구나. 미국은 온전히 내 힘으로 내 길을 개척하고 두드려야 하는 곳이구나. 그동안 부모와 환경 탓을 하며 의기소침했던 날들이 새삼 부끄러워졌다. 운 좋게 작은 도전이 값진 성공으로 이어지며 결국 나는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되새겼다. 첫 성취를 발판 삼아 계속 앞으로 나가보겠노라고 다짐했다.


  조금은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나는 느리지만 한 발짝씩 앞으로 내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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