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단구름 Jun 24. 2024

오해받는 유교 때문에 가슴 아프다.

6월 1일 식단&운동&체중 변화

확실하게 빠지고 오래 유지하는 루틴 다이어트

6월 첫째 주(61~68) 체중 변화:

67.3kg ---> 66.9kg (0.4kg 감량)     

다이어트 시작부터 체중 변화(52~68):

69.5kg----> 66.9kg (2.6kg 감량)

630일까지 감량 목표: -3.2kg(순항 중!)     






61일 토요일    

  

주말 다짐:

1. 과식 금지

2. 식후 낮잠 금지   

   

아침: 

계란죽,

올리브유 토마토,

참외,

말린 바나나,

카누 아이스 라테


점심: 

밥과 반찬(고등어구이 등),

말린 바나나

*고등어구이, 메밀전병, 무생채, 상추겉절이, 오이부추김치, 말린 바나나


간식: 

바리스타룰스 에스프레소 라테


저녁(18시 이후):

멕시칸 요리,

청포도 하이볼

*바비큐 산더미 폭탄 파히타, 브리스킷 타코, 타코 라이스     


*카누 아이스 라테 칼로리: 1(14g)/65kcal  

*바리스타룰스 에스프레소 라테 칼로리: 1(250ml)/162kcal

   


계란죽, 올리브유 토마토, 참외, 말린 바나나, 카누 아이스 라테


고등어구이, 메밀전병, 무생채, 상추겉절이, 오이부추김치, 말린 바나나


바비큐 산더미 폭탄 파히타, 브리스킷 타코, 타코 라이스, 청포도 하이볼

 



 


운동 1.. 도보 70분 + 도보 40

운동 2.. 모닝 스트레칭      






아침 공복 체중.. 67.3kg      




     

오해받는 유교 때문에 가슴 아프다.     


몹시 단순한 일과:     

아침 식사 전: 케이랑 낮은 산행

점심 식사 후: 케이랑 시장 구경 – 케이랑 낮은 산행(성묘)

저녁 식사 후: 케이랑 산책     


누가 보면 되게 부지런한 사람들처럼 하루 종일 많이 움직였다. 누가 보면 되게 사이좋은 사람들처럼 걷다가 가끔 손을 잡기도 했다. 식혜와 포와 사과와 배와 백화수복을 사면 어느새 케이가 장바구니를 들어주었다. 몇 킬로그램 되지 않는 장바구니쯤이야 내가 충분히 들 수 있다는 걸 나도 알고 케이도 알지만 시장을 갈 때마다, 케이가 함께 있을 때마다, 언제나 케이가 들어주었다. 이십 년째 ‘괜찮다’고 사양해도 케이 역시 ‘괜찮다’고 얼른 장바구니를 가져간다. 케이와 함께 시장 구경을 하는 것만으로도 몹시 행복한 주말인데 케이의 사려 깊은 마음 덕에 더할 나위 없다.


이렇게 케이와 함께 다니는 좋은 세상에 살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 시절에는 남편이 힘이 약한 부인을 도와 집안일을 하거나 잘해주기라도 하면 남자 망신 다 시킨다고 느닷없이 욕을 듣기도 했다. 부인의 의견을 존중하면 팔불출이라고 조롱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애처가'와 '공처가'라는 표현도 모두 놀림과 비아냥의 대상이었다.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 번씩 패야 한다는 끔찍하다 못해 경멸스럽고 웃기지도 않은 표현들을 티브이나 일상에서나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기던 시절이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 아니다. 케이와 나의 부모님 시절의 이야기다. 우리는 자라는 동안 드라마, 영화, 일상에서 부인에게 잘하는 남편들이 어떤 비웃음을 받는지 보고 자랐다. 십여 년쯤 전 부부 동반 모임에서는 이런 말을 들었었다. 아내에게 잘하는 남편들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어떤 남편이 이렇게 확신했다.


“뭔가 잘못한 게 있겠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은 아버지 세대의 영광에 대한 향수일까, 변해버린 남편상에 대한 최후의 저항 같은 것이었을까, 사랑받는 남편을 보는 개인적인 시기심이었을까, 나는 가끔 그들 부부는 안녕하신지, 궁금하다.




유교 문화의 영향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런 관계는 유교 문화가 아니라 이기적인 사람들이 짜놓은 판대로 유교를 잘못 이해한 거라고 말하고 싶다. 누가 이렇게 유교의 본질을 왜곡하나 봤더니, 이기적인 남편이 아내에게, 이기적인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이기적인 어른이 젊은이에게, 이기적인 선배가 후배에게, 이기적인 언니가 동생에게 유교를 명분 삼아 제 입맛대로 제멋대로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유교에서 중요하게 여긴 ‘인, 의, 예’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지켜야 할 애티튜드를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란 남편과 부인,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나이 많은 사람과 나이 어린 사람, 직급이 높은 사람과 직급이 낮은 사람, 사장과 직원, 사장과 손님을 모두 포함한다. 남편을 존중하라는 것의 의미는 자신의 타당한 의견도 표현 못 하면서 남편 의견을 무조건 따르라는 것이 아니며, 남편 또한 부인의 의견쯤은 가볍게 묵살할 수 있는 아랫사람으로 여기라는 의미가 아니다.


유교의 병폐 중 하나로 꼽히는 체면 중시는 인간으로서 행해야 하는 도리를 의미하는 것이지 부부가 나란히 서서 손도 잡지 못하는 체면, 남편이 부인에게 잘하는 것을 비난하는 체면이 아니다. 남편과 시어른의 폭압과 폭력에도 가정이 평안하라고 순종적으로 굴고, 악습과 관습을 고분고분하게 따르는 것이 미덕이라고 강요하는 은밀한 괴롭힘을 허례의식으로 덮는 체면이 아니다.




한 손에 하나씩 장바구니를 나눠 들고 케이와 손을 잡고 걷는다. 부인의 보폭 같은 건 배려도 없이 길고 튼튼한 다리로 성큼성큼 앞서 걸으며 왜 이렇게 굼뜨냐며 빨리 오라고 소리치면, 양손에 한 보따리씩 들고 있는 부인은 남편의 뒷모습을 놓칠세라 작고 약한 다리로 허겁지겁 따라 걷는 광경을 보고 자란 케이와 나는 나란히 함께 걷는다. 우리는 나란히 손도 잡고 걷는다. 케이가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어주어도 아무도 케이에게 ‘남자 망신 다 시키고 있다’고 핀잔 주지 않는 좋은 세상에 살고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든다.


2000년대 초반부터 부부 사이의 분위기는 빠르게 바뀌었다. 짧다면 짧은 시간 안에 부부의 수직적 권력관계는 믿을 수 없는 수준으로 변했다. 근엄한 아버지가 가정의 대소사를 결정하면 대게는 군말 없이 따르던 엄마를 보고 자란 나는 한때 케이가 가장 좋은 남편이라고 생각했다. 부인에게 잘 대해주는 다정한 남자이며 아이들과 잘 지내는 좋은 아빠를 남편으로 둔 나는 정말 결혼을 잘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금비와 효자 아들 친구들의 부모들을 만나면서 케이 같은 좋은 남편, 좋은 아빠들이 이 시절에는 수두룩하다는 것을 알았다. 금비와 효자 아들에게 “너네는 아빠가 케이라서 좋은 줄 알아.”라고 우쭐거리면 “내 친구 아빠들도 다 그래.”라고 아무렇지 않은 대답이 돌아왔다. 케이의 친구들도 모두 부인을 존중하고 부인과 수평적으로 잘 지낸다. 자기 멋대로 하면서 부인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부인을 강압적으로 대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불과 이십 년 전, 케이와 내가 결혼했을 무렵만 해도 남편이 부인의 손을 잡고 다니거나, 다 같이 먹은 설거지를 도와주고, 따뜻하게 잘해주는 것을 시어른들이 꼴 보기 싫어하기는 했다. 뭐가 떨어진다느니, 큰일을 못한다느니, 하면서. 그래도 우리는 손을 잡았고, 케이는 도와주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그 시절의 어른들은 기성세대와 좀 많이 다르게 행동하고 표현하는 우리에게 X세대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며 서로의 인격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조심했는데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고 푸념했다. 딱히 좋은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X세대는 이기적인 성향이 강하며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X세대의 개인주의에 대해 유교를 오해한 것만큼이나 잘못 이해한 듯하다.




"부모 세대를 보고 자랐지만 많은 부분에서 우리는 다르게 살고 있어."라고 케이와 나는 소회한다.


"엄마가 행복해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것은 옳지 않다고 느꼈으니까."

우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을 대하는 관습이 인간을 인간으로서 존중하지 않는 방식이라면, 비록 부모의 가르침이라도 거부해야 한다. 오늘의 우리의 행동이 인간을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방식이라면 누군가 꼴 보기 싫어해도 변화해야 한다. 오랫동안 지속된 악습과 관행을 거스르는 데는 미루지 않는 결단과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오늘을 살아가는 세대가 여러 선택지 중 언제나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나의 이익을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이것이 인간을 존중하는 방식인가,이다. 인간을 존중하는 방식은 오랫동안 나와 가족을 평안 속에서 살게 하고 우리 모두의 생존을 돕는다. 인간을 인간으로 존중하고 있지 않다면 그 방식은 언제든 즉시 그만두어도 좋다.


유교라면 시대착오적이라며 질색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엄마에게 웃음을 앗아가던 유교, 희한한 방식으로 나를 괴롭히던 유교는 이 시대에 맞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인, 의, 예’의 가르침을 치워버린 사회의 다음 날은 약육강식의 사회다. 나는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다. 웃고 있지도 못할 것이다. 오해받는 유교 때문에 가슴 아프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