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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온 도시가스 검침원 이름이 뭐지?

그녀의 이름을 묻지 못한 이유

by 비단구름

얼마 전에는 도시가스 누스 정기 검침이 있었다.

식구들이 모두 나가고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타서 소파에 앉아 쉬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검침원이 들어왔다.


검침원은 짧은 인사를 건네고 바로 주방으로 가서 가스검침기를 밸브에 대고 누수가 있는지 점검했다.

그 모습을 빤히 보다 내가 말을 건넸다.


“벌써 검침 때가 됐나 봐요.”


“네, 시간 빨리 가죠.”


“그런데 점검하시는 분이 바뀌셨네요.”


그러자 검침원이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원래 기억력 좋으세요?”


“네. 뭐. 대체로 사람을 잘 기억하고 알아보는 편이에요. 하지만 이름까지 완벽하게 기억하는 것은 아니에요. 이름은 종종 가물가물하거든요.”


“네.” 하고 검침원이 미소를 지었다.


작년 즈음 왔던 검침원의 인상착의는 어렴풋이 기억나는 듯한데, 그녀의 이름은 한 글자도 모른다.


만약 오늘 그녀가 우리 집에 왔다면 작년에 왔던 그분이시네,라고 기억을 했을지라도 그녀의 이름은 머릿속에 없다.


우리 집의 가스가 세나 세지 않나 점검해 주었던 고마운 사람의 이름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 통성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도시가스 검침원 이름이 뭐지.png



인상 좋은 검침원과 더 이야기를 나눠볼까 했지만 그만두었다.

감히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일도 그만두었다.


나는 그녀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검침원님?


저기요?


그녀는 나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사모님?


저기요?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것이 가장 깔끔한 것 같기는 한데, , , , ,


내가 그녀에게 이름을 물었다간 ‘이 여자 무슨 의도로 내 이름을 묻는 거지? 내가 뭐 잘못했나?’ 그녀를 겁먹게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반대로 그녀가 검침 받는 사람의 이름을 물어보기라도 하면 “왜 남의 이름을 물어요?”라고 까칠하게 받아치거나, 남의 이름을 캐고 다닌다며 화들짝 놀란 사람에게 민원을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검침을 마친 그녀에게 “저기요.”라고 부르면서 복숭아 하나를 씻어서 건넸다.

그녀는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선 떠났다.


우리 집 도시가스 안전을 점검해 준 고마운 사람인데,

복숭아도 나눠 먹은 사이인데,


우리는 오다가다 마주쳐도 서로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녀가 내년에 또 우리 집을 방문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서로 알아보지 못하겠지.


알아보더라도 처음 본 사람처럼 할 일을 하고선 안 볼 사람처럼 헤어지겠지.


이름을 부르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우리는 뭐가 그렇게 바빠서 이름도 물어보지 않고 급하게 헤어지는 걸까.


우리는 많은 사람을 스쳐 보내면서 외로워한다.


호칭 대신, 직업 대신 이름을 더 많이 불렀더라면 그들의 이름을 기억했을까.

우리는 언제쯤 서로의 이름을 부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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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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