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을 불러도 될까요?
언젠가 지인 둘이 감정이 상하도록 언쟁을 벌인 적이 있다.
한 치의 타협 없는 거친 논쟁 끝에 둘은 지금은 오다가다 마주쳐도 아는 체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내 입장에선 둘 다 별난 사람들은 아닌듯한데, 두 사람 모두 어떤 모임에서든, 어떤 장소에서든, 동네에서 왔다 갔다 하다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순영(가명) 50대. 여자.
정숙(가명) 60대. 여자.
같은 모임 회원이었던 50대 여자 사람 순영이 60대 여자 사람 정숙에게 “정숙 씨.”라고 불렀다.
'정숙 씨'라는 말을 들은 정숙은 펄쩍 뛰며 순영에게 주의를 준다.
“○○씨는 나이 많은 사람이 나이 어린 사람에게 사용하는 것이지,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쓰는 것이 아니에요.”
정숙의 말에 순영은 동의하지 않고 대꾸한다.
“○○씨는 누구에게나 쓸 수 있는 말이에요.”
요즘 조금 교양 있는, 조금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은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반말하지 않는다.
호칭도 ○○씨라고 불러준다.
나는 이런저런 모임을 몇 개 하고 있는데 모임 회원들은 나에게 구름 씨라고 부른다.
옛날처럼 '구름아' 라거나, '너'라고 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요즘은.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모임의 막내인 나는 그들에게 ○○씨라고 부르지 않는다.
목구멍에 뭐가 탁, 걸린 것처럼, ○○씨라고 부르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것처럼.
나이 어린 사람에게 ○○씨라고 부르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배운 사람인 듯하다.
반대로 나도 그들에게 ○○씨라고 부르는 일이 허용될까?
안 삐질까?
쟤 당돌하다고, 저거 보통이 아니라고, 싸가지가 없다고 하지 않을까?
나보다 나이 많은 그들은 언제고 '구름 씨'라고 내 이름을 부르는데 나는 그들에게 ○○씨라고 부를 수 없다. 내가 그들에게 대등하게 ○○씨라고 불렀다간 ‘나이도 어린 게 싸가지가 없다’거나 ‘착해 보이는데 성깔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 것이다.(그런 소문, 상관없긴 하지만.)
나도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씨라고 불러도 될까?
나보다 열 살쯤, 스무 살쯤 어린 사람이 나에게 구름 씨 라고 했을 때 내 기분은 어떨까?
아직 그런 경험이 없어서 짐작도 안 간다.
이 문제에 답하기 전에 반드시 여러 단계에 걸쳐 생각해야 한다.
내가 20대 일 때, 40대 일 때, 60대 일 때.
내가 나보다 나이 어린 저 사람에게 ○○씨라고 하는 것은 이만하면 존중하는 거라고 하면서, 나보다 나이 어린 저 사람이 나한테 ○○씨라고 하는 걸 허용할 수 있나?
지금의 이 현상은 우리 사회의 암묵적 합의인가.
개혁으로 보이는 듯한 주장도 대게 개인의 입장에 따라 기준이 바뀐다.
거창하게 멀리 볼 것도 없다.
동네 조그만 모임에서도 기준이 고무줄처럼 왔다 갔다 하는 개혁은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어, 어떤 모임에서는 모든 회원들이 회비를 걷고 있는데 회장은 예외다.
이유가 꽤 훈훈하다.
회장이 일도 많고 고생이 많기 때문에 회비를 면제해 준다는 것이다.
이 관행은 몇 년간 평화롭게 유지가 되었다가 신입회원들이 들어오면서 안건이 되었다.
회장만 회비를 내지 않는 것은 몹시 불합리하다는 주장이었다.
일리 있는 주장이었는데, 글쎄, 목청을 높이며 회장도 회비를 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던 사람이 회장이 되니까 그 주장을 쏙 철회하더라는 것.
또 다른 모임에서는 모임의 총무에게 회원들이 일정 금액씩 회비를 납부하여 수고비를 주었다.
이 관행도 몇 년간 유지가 되었다.
물론 회원들 중에는 회비로 총무의 수고비를 주는 관행이 못마땅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총무가 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총무 업무가 너무 많다며 수고비를 인상한 것이었다. 하하하.
조직의 쇄신을 위하는 것처럼, 사회의 정의를 위하는 것처럼 목에 핏대를 세우며 주장하던 것들이 기준이 없다.
입장이 바뀌면 기준도 바뀐다.
기준이 왔다 갔다 한다.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은 기준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호칭 문제에 대해서도, 누군가의 이름을 ○○씨라고 부르는 일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다각도에서, 여러 측면에서, 내가 나이를 먹는 것까지 충분히 고려하고, 자식들의 입장까지도 충분히 고려한 후에 답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