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길 위에 혼자 있는 기분이 든다

by 비단구름

오늘도 채팅방은 50인이 올린 후기로 와글와글하다. 더러워 죽겠는 쓰레기 사진을 채팅방에 올리고 어느 동네 쓰레기가 얼마큼 더러운 가 염탐하듯 본다. 구경 끝엔 경외심이 든다. 보기만 해도 구역질 나는 담배꽁초들, 먹다 버린 김밥, 반이나 남아있는 음료수캔, 썩어버린 빵조각들을 다 치워버렸다니.


1.5킬로미터는 권장 사항일 뿐 더 오래 걷고 더 많이 줍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열정만큼이나 꽉 채워져 있는 그들의 쓰레기에 비하면 나의 쓰레기들은 초라하다.




내 단톡방 중 어느 방의 규칙은 단톡방에 아무것도 올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로지 운영진의 공지사항만 올라온다는 것이 원칙이다. ‘네, 알겠습니다.’와 같은 대답도 하지 말란다.


친목이라고는 사양하는, 인간미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이런 단톡방은 처음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러 사람이 떠들기 시작하면 정신이 없어서 읽기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뭐가 불편하다는 거야? 톡이 많으면 천천히 보면 되지.’


지금보다 몇 년 어리던 때는 단톡방에 몇 십 개씩 올라온 톡을 시간 될 때 한 번에 몰아 봐도 필요 없는 잡담과 정보를 정확하게 구분해 메시지를 놓치지 않았다. 매우 빠르게 화면을 스크롤하면서도 화면 올라가는 순서대로 내용이 주르륵 머릿속에 정리가 되었다.


‘대답도 하지 말라.’는 희한한 톡방 운영방침에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의 나름 노련한 구석이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비록 좀 삭막하고 몰인간적인 거 같기는 해도.



- 쓰레기를 주울 때마다 사진을 찍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날의 활동 마무리 후 종량제 봉투에 담긴 결과물 사진 한 장만 단톡방에 올려 보고하면 되는 거였다. 앱에 사진은 자유롭게 등록해도 된다.

- 1일 1회 활동이 원칙이다. 주 1회 활동이 원칙이나 주 4회까지 봉사시간을 인정해 준다.

- 사전 조사 기간에 등록한 지정 경로에서 활동해야 한다. 다른 경로에서 플로깅을 하려면 루트 변경을 해야 한다.

- 1.5킬로미터를 활동해야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1회 1시간을 채워야 한다는 거였다. 한 시간을 활동해야 봉사시간이 인정되기 때문이었다. 1.5킬로 미터라는 것도 실은 한 시간 정도 소요될 것을 감안한 거리였던 모양이었다. 활동 종료 후 종량제 봉투에 담긴 사진을 채팅방에 공유하도록 권한 것도 봉사 시간 인정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1.5킬로미터보다 더 걸어도 되고 덜 걸어도 되지만 봉사시간 인정을 받으려면 한 시간을 채워야 한다, 는 거였다. 오늘에서야 눈 가리고 나무만 더듬다 숲을 이해하게 된 거 같다.



플로깅 장소를 1.5킬로미터로 선정하기에 동네는 넓었다. 나름의 기준으로 학교 근처에서 활동하기로 정했다. 황사도 모자라 미세먼지도 모자라 초미세먼지라는 개념까지 등장하더니 바다도 오염됐다. 드넓은 바다에서 증발한 수증기는 하늘의 구름이 될 테고 바람 따라 이동하며 토양에 오염된 비를 내려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 곳곳이 병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어린이들이 함성을 지르며 뛰어놀고 학생들이 깔깔거리며 거닐 수 있는 깨끗한 거리를 상상했다.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 앞을 지나는 경로를 선정했다. 사전 조사 기간에 미리 등록한 경로를 따라 플로깅을 해야 하는데 막 숲을 이해하기 시작한 나는 다른 경로로 이탈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지정 장소는 아니지만 공원 옆에 붙어있는 놀이터를 한 바퀴 훑고 가기로 했다. 쓰레기는 온천지에 널려 있으니까. 하는 김에 다른 데도 치우고 싶으니까.


오전 시간, 놀이터는 이상이 없어 보였다. 놀이터 한쪽으로는 얕은 둔덕이 이어져 있다. 촘촘히 자라고 있는 소나무와 활엽수들이 한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주고 청설모와 동네 텃새들의 놀이터가 되어 준다. 둔덕 가장자리의 배수로에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 마스크, 물티슈,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지 모르겠는 산업용 비닐류들을 주워 담았다. 가장 많은 것은 아이스크림 비닐이다.


센터 직원들도 플로깅 활동에 동참하고 있을까? 모두가 동참해야 하는데. 환경을 개선하고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하는 것은 니일 내일을 구분할 일이 아닌데. 정치 지도자들과 국민들의 기대치는 종종 어긋났다. 지도부 또는 집행부는 선을 그었다. 정치지도자들은 국민들에게 ‘네가 잘해라.’, ‘네가 더 잘해라.’ 하고 국민들은 ‘너도 해라.’, ‘같이 하자.’ 했지만 간극은 점점 더 벌어졌다.


직업에 귀천도 없는 마당에 얼마나 대단한 일들을 한다고. 인공지능과 챗GPT가 다 답하는 마당에. 전산화가 되어 컴퓨터가 다하고, 기계화되어서 로봇이 다하는 마당에 얼마나 바쁘다고. 땡볕에서 골프 라운딩할 시간에 쓰레기 주우며 플로깅 회동이나 하시면 좋으련만.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 시간이 없지는 않을 텐데.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지.’라고 업신여기는 위선은 번드르르한 말과 그렇지 못한 행동의 위정자들을 배출해 낸다.

어쩌면 센터 직원임을 밝히지 않고, 센터 소장임을 밝히지 않고, 플로깅 활동을 함께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빠르게 이상 징후를 보이는 기후 환경과 각박하다 못해 살벌한 사회문화적 환경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내숭을 떨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라고 사인을 보내준다. 왼손이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알리면 오른손도 거든다. 선한 영향력은 훨훨 날아 널리 알려지고 퍼져야 한다.


“산책하면서 쓰레기 줍는 거예요?”

이십이 분을 걸으니 저 앞에서 강아지 배변을 치우던 여자가 신기한 광경을 본 듯 말을 건다.

“좋은 일 하시네요.”

여자가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적극적으로 가까이 다가온다.

“정말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시네요.”

이런 사람이 있구나, 놀라는 눈빛이다.


사실 20리터짜리 종량제 봉투에 쓰레기를 주우며 다니는 것은 좀 부끄럽다. 쓰레기를 줍는 행위에 대한 부끄러움은 아니지만 겸연쩍다. 나 자신이 가식적이라는 기분도 느낀다. 신호대기에 걸린 자동차들이 나만 보고 있을 것 같은 착각도 부끄러움에 일조한다. ‘왜 부끄러운 거지? 다른 단체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며 쓰레기 주울 때는 부끄럽다는 생각 해본 적 없는데! 혼자 쓰레기 주우러 다니는 게 이렇게 부끄러울 일이야? 부끄러워해야 하는 사람들도 고개 빳빳이 들고 큰소리치고 다니는 세상에서?’ 하여간 쓰레기를 주우며 다니는 일은 좀 부끄럽지만, 이런 칭찬의 말을 들으면 부끄러움의 감정은 ‘그래. 잘하고 있어. 이건 해도 되는 일이야. 해야 하는 일이야.’라는 용기로 바뀐다.


길 위에 혼자 있는 기분이 든다. 멈추지 말고 꿋꿋이 걸어가야 한다. 터벅터벅 걸어 도달한 나의 생애는 어딘가에 닿아 미소 지을 것이다. 그곳이 집이든 안식처든.



#플로깅 #줍깅 #쓰담달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