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년의 사랑과 고통

내 사랑에 기한이 있다면 만년으로 하겠어

by 비단구름

‘내 사랑에 기한이 있다면 만년으로 하겠어.’ <영화 서유기: 선리기연>


내 안에는 수년째 분해 중인 쓰레기가 있다. 쓰레기 같다, 고 여겼던 경험들은 타인을 이해하려 하는 사려 깊고 성숙한 나로 다듬어 주었다. 내 마음과 기억에 남아 있는 쓰레기 같은 고통의 흔적은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열쇠가 되었다. 한때의 쓰레기라도 언젠가는 자연의 넓은 품에서 소생하여 재사용될 수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살아 있는 동안 끝내 거름이 되지 못할 쓰레기도 있을지 모른다. 나는 이 쓰레기 같은 감정이 쓰레기 같은 태도를 가진 쓰레기 같은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플로깅을 하다 보니 ‘쓰레기 같은’이라는 수식어를 남발하는 중이다.


내가 플로깅을 하는 이유,,,


‘환경을 생각해서.’라고 거창하게 말하지만.


‘내가 사는 사회에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라고 허세를 부려보지만.


실은,

이런 이유가 있다.


오늘은 페트병을 많이 주웠다. 테이크아웃 음료컵도 주웠다. 날이 더워지고 있는 듯하다. 쓰레기로 버려진 캔에는 특징이 있다. 대체로 안에 음료가 조금 남아 있다. ‘음료수가 철렁거리는 캔을 들고 다니기는 불편하겠지.’

여덟 시 구분, 초등학교 앞을 지났다. 예쁘게 반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학교 담장으로 바짝 다가와 관심 있게 쳐다본다.

“강아지 예뻐요.”

아이가 수줍게 말을 건넨다.

“강아지 예쁘니?”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저 멀리 뛰어간다.


우리 동네 쓰레기의 특징이라고 할 만한 것을 하나 꼽자면 부피가 큰 쓰레기보다는 자질구레한 쓰레기가 많다고 할 수 있다. 껌종이, 아이스크림 막대기, 아이스크림 껍데기, 테이크아웃음료컵, 담배꽁초, 작은 음료페트병, 음료캔, 마스크.


화단에 알약껍데기가 버려져 있다. ‘지만 살고 나무는 죽이겠다는 건가?’ 검정 뿔테 안경이 골목에 버려져 있다. 자세히 보니 렌즈가 그대로 있다. ‘안경을 버리고 무사히 집으로 갔기를 바란다.’

‘카드발급’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종이가 땅바닥에 있다. 주우려고 보니 스티커다. 바닥에 붙어 꿈쩍 않는다. 보도블록 바닥을 집게로 긁어보다 포기했다.


상가주택과 다세대주택 밀집 지역에는 ‘일수’, ‘대출’ 명함이 많이 떨어져 있다. 절벽에 선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중인지 밀어버리려는 작정인지 알 수 없다. 담배꽁초는 뭐 말해 뭐 해. 오늘도 많다. ‘고민 많은 사람이 많은 거겠지.’


밝은 색 바탕에 ‘간편 대출’이라고 크게 인쇄되어 있는 명함이 유독 눈에 들어오는 걸 보니 이 명함은 성공한 디자인인 듯하다. 복지도 아니고 자선사업도 아닌 달콤한 유혹을 누군가 새벽에 잔뜩 뿌려놓았다. 신용이 없는 사람에게 간편 대출이라더니 돈 없는 사람에게 돈을 갚으라니. 세상에 공짜는 없는데 여기저기 안 보이는 데가 없는 것이 꼭 공짜 같다.


큰 대로변으로 나왔다. 밝은 색 간편 대출 명함이 상가 앞에 한두 장씩 버려져 있다. 그제야 간편 대출 명함이 쓰레기인지 아닌지 헷갈린다. 어떤 이에겐 금 동아줄처럼 느껴질 명함이 쓰레기 같은 폼으로 길바닥에 흩뿌려져 있다. 누군가에겐 금동아줄, 누군가에겐 썩은 동아줄 위를 사람들이 밟고 간다. 간편 대출 명함은 지하철 입구에도, 계단에도 있다. 상가 문 바로 앞에 뿌린 것을 제외하고도 인도를 따라 걸으며 대출 명함을 오십 장쯤은 주운 거 같다. 한편으론 타인이 깨끗한 환경에 있을 기쁨을 배려하지 않고 거리에 쓰레기처럼 마구잡이로 뿌린 명함에게 대출을 받으면 뼈도 못 추릴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명함은 종이 같지만 종이 쓰레기로 분류할 수 없다. 명함처럼 비닐 코팅되어 있는 종이는 일반쓰레기로 버려야 한다. 영수증도 마찬가지로 일반쓰레기이다.


<쓰레기 분해 기간>

쓰레기 분해 기간은 물품의 재질, 물품의 특성, 분해환경 등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략 다음과 같다.

◩ 한 달:

-과일 껍질, 사과 심지

-코튼 셔츠

-종이류(페이퍼 타월, 티슈, 종이봉투, 신문지, 파지 박스, 왁스 칠 한 종이각(코팅된 종이), 합판


◩ 6주: 시리얼 박스와 바나나껍질 등


◩ 2~3개월: 밀랍으로 코팅한 종이용기(우유팩, 과일주스 케이스, 판지 등)


◩ 6개월: 티셔츠, 얇은 종이로 된 책 등


◩ 1년: 가벼운 모직으로 만든 옷, 양말


◩ 2년: 오렌지 껍질, 담배꽁초(1~5년), 공사장에서 쓰인 합판


◩ 5년: 플라스틱 코팅 종이, 우유갑 등


◩ 10년: 일부 담배꽁초


◩ 10~20년: 비닐봉지


◩ 30~40년: 스타킹, 나일론 제품, 1회용 아기기저귀, 낚시 그물 등


◩ 50년: 캔, 자동차 타이어, 가죽, 스티로폼 컵


◩ 80년: 폼플라스틱 부표, 두꺼운 가죽 신발 같은 일부 의류


◩ 100년: 배터리


◩ 200년: 알루미늄 캔


◩ 450년: 페트병, 플라스틱 음료 홀더


◩ 500년 이상: 위생 패드, 플라스틱 생수통, 화장품 샘플 포장지


◩ 600년: 낚싯줄


◩ 1000년: 일부 비닐봉지, 화장품 샘플 포장지, PVC 카드


◩ 100~200만 년: 유리병(플라스틱과 비닐에 집중했는데 유리야말로 착한 얼굴의 악당이었던 건가!)


◩ 200만 년 이상: 폐건전지


태국의 체감온도가 벌써 50도라는 뉴스가 전해진다. 기상 캐스터는 대구의 기온이 33도라고 했다. 대구뿐 아니라 전국의 기온이 30도 안팎이다. 오늘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수치는 모두 나쁨이다. 뜨거운 비닐하우스 안에 갇혀 생화학 생체실험을 당하고 있는 기분이다. 겨우 오월이라는 것이 놀랍다.


지구는 만 년 동안 인간을 비롯해 지구상의 모든 생물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다. 토양과 공기와 바다와 강과 계곡과 산과 정글과 사막과 바위와 모래와 구름과 달과 별까지 아낌없이 내주었다. 지구가 조건 없이 내어주는 양식을 취하고 섭취하는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 중 인간만이 지구에게 만 년의 고통을 주고 있다.



#플로깅 #줍깅 #쓰담달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