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하면서 대가를 바라면 안 되지
앞으로 모든 면에서 환경은 악화될 거라는 생각이 드는 즈음, 끝이 보이는 결말, 마지막이 정해져 있는 비극을 향해 다 같이 달려가고 있는 암울한 기분이 들 즈음, 아무리 봐도 좋은 꼴보단 안 좋은 꼴을 한 지구와 인류의 미래가 그려지는 즈음, 자원봉사센터에서 주관하는 ‘플로깅’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센터에서 집게와 장갑과 파우치(집게와 장갑을 넣는 용도인 듯하다)를 보내주었다. 센터에서 보내준 녹색 집게의 길이는 24센티미터이다. 우리 집 고기 굽는 집게보다도 짧다. 봉사자들에게 이 집게를 제공하기로 결정한 사람은 한 시간 정도 줍깅을 해 봤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스테인리스로 만들었다면 길이로 보나 사이즈로 보나 고기 구울 때 쓰면 안성맞춤일 것 같지만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집게다. 집게 끝이 뭉툭하여 둔해 보인다.
‘지치지 않으려면 장비가 중요하지.’
인터넷으로 쓰레기 집게를 검색했다. 가볍고 그립감이 뛰어난 컴포트 핸들을 장착한 뱀 집게, 인체공학적 손잡이와 시원하게 벌어지는 집게발로 무엇이든 집을 수 있다는 악어 집게가 현대인이 쓰레기를 주울 때 사용하면 딱 좋을 것 같은 모양새다.
‘하지만 커다란 쓰레기를 줍기에는 아쉬워 보이는 군.’
이 이벤트와 별개로 나는 한 달에 한 번 줍깅을 하고 있는데 그때 사용하는 쓰레기 집게가 손에 익어버렸다. 손잡이 부분이 빨갛고 가볍고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될 만큼 길다. 끝은 야무지게 지그재그 모양으로 마감이 되어 어떤 쓰레기라도 집어 올린다. 바닥에 나뒹구는 아주 작은 담배꽁초, 얇디얇은 껌종이, 누군가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인 씁쓸한 명함들까지. 나는 이 쓰레기 집게를 처음 사용한 순간 반해버렸다. 하지만 가질 수는 없다. 엄연히 동사무소에 비치된 공공재산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업체들이 있다. 여러 페이지를 집요하게 훑은 결론은 빨간 손잡이 쓰레기 집게는 대게 세 가지 종류이다. 50센티미터, 70센티미터, 80센티미터. 동사무소에 있는 집게가 몇 센티미터였는지 가물가물하다. 다음 달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당장 동사무소를 찾아가 집게 좀 보여주세요, 하기도 구차스럽다.
화개장터만큼이나 없는 것 빼고 다 파는 다이소에도 쓰레기 집게가 있는데 50센티미터다. 집게를 땅에 대보니 허리가 확실히 수그려진다. 그럼 70센티미터 내지는 80센티미터. 겨우 십 센티미터의 차이를 두고 어떤 것을 살까, 진지하게 고민한다. 아마도 한가해서 그런 것 같다. 80센티미터 집게를 구매했다. 이천오십 원짜리를 구매하면서 배송비가 삼천 원, 합이 오천 오십 원이다. 바보 같은 짓이라 생각하면서도 어김없이 바보짓을 한다.
플로깅은 다음 주부터다. 이번주는 장소 탐색 기간이다. 하지만 50인의 채팅방(채팅방엔 어째서인지 49명만 들어와 있다.)은 플로깅 후기로 벌써부터 들썩인다.
사람들 진짜 급하다! 문장 하나하나마다 착함을 뿜어내는 센터 주임이 분명히 다음 주부터라고 공지했건만!
사람들 진짜 빠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것 같다!
사람들 진짜 부지런하다! 대한민국이 세계의 이목을 받는 리더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이토록 성격 급한 이타적인 사람들이 있어 대한민국이 산다. 부지런하고 빠른 50인의 사람들이 대한민국 곳곳에 있어 감사하다. 쓰레기 같은 것을 줍는데도 이렇게 열정적인 사람들이 사는 사회의 구성원인 것은 큰 축복이다.
우리는 원래 이타적인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것은 독선적 특권의식과 우월감만이 가득한 일부 정치꾼들과 물욕으로 치장한 화려한 사람들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역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50인들이다.
조금 부족한 대한민국을 보완하고 개선해 온 것은 언제나 50인들이었다. 개인주의를 가장한 이기주의가 판친다는 세태, 이타적 행동마저 위선으로 보이게 된 믿지 못할 사회는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결국 제 길을 찾을 것이다. 잠시 잊고 있었다. 대한민국, 한국 사람들, 대단하다.
집게도 왔겠다. 채팅방 분위기도 후끈 달아올랐겠다, 쓰레기 그깟 거 먼저 주워 버리겠어! 더 많이 주워 버리겠어! 쓰레기 다 내 거야!!!!!!!!!! 과감하게 배송비를 투자하고 구입한 장비를 챙겨 비장한 마음으로 나간다.
채팅방에 집게가 작아서 허리가 아프다는 의견이 올라오는 것을 보니 배보다 배꼽이 큰 집게를 구매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플로깅을 할 때는 장갑을 끼고 집게와 쓰레기 종량제봉투, 그리고 핸드폰을 꼭 들고나가야 한다. 핸드폰 앱을 켜두고 쓰레기를 주울 때마다 어떤 쓰레기를 주웠는지 체크하고 사진을 찍어 앱에 올려야 한다.
‘매번 이렇게 해야 하다니 이거 은근 번거로운데?’
하지만 늘 그렇듯 익숙해졌다. 중학교 앞 공원길에는 아이스크림 비닐과 아이스크림 막대기 천지다. 화단의 짧은 화초 위에도 아이스크림 비닐과 막대바가 덩그러니 올려져 있다.
“거리에 쓰레기 버리면 안 돼.”라고 알려주는 가정은 더는 없는 걸까, 생각한다. 하지만 방금 전에 지나온 초등학교 앞에는 쓰레기가 없지 않았던가?
공원길을 벗어나 이면도로로 접어들자 헨젤과 그레텔이 버려둔 빵 부스러기처럼 담배꽁초가 인도를 따라 내 앞길에 놓여 있다. 더러워 죽겠다. 담배꽁초 무덤 같은 가로수 아래에서 담배꽁초를 주워 담고 있는데 중년 여성 한 명이 곁을 지나가며 나지막이 속삭인다.
“좋은 일 하시네요.”
삼십 분을 걸으니 칭찬을 받는다. 시간은 참 오묘하다. 정성이든 나태함이든 일정 시간을 쏟아부으면 상응하는 결과가 돌아온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드니 여자와 눈을 마주쳤다. 남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여자가 온화한 표정으로 “당신한테 하는 말이에요.”라는 눈빛을 보내고 가던 길을 간다.
삼분의 이쯤 채워진 20리터 쓰레기 종량제를 집으로 가지고 들어와 주방 한편에 세워 두었다. 이제 쓰레기를 물로 깨끗이 씻고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 쓰레기봉투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 벌써 개미 한 마리가 탈출해 주방 바닥에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다 채워지지 않은 쓰레기봉투를 이대로 버려야 하나, 거리의 온갖 해충을 집으로 끌고 들어온 것은 아닐까, 나도 어쩔 줄을 모르겠다. 우리 아파트 재활용 버리는 날이 돌아오려면 적어도 오일은 지나야 한다.
‘우리 동네에 재활용 분리하는 곳이 있었으면.’
거리에서 주운 쓰레기를 집으로 가져오는 것은 개선했으면 좋겠다. 거리의 쓰레기를 집으로 가져가라니 좀 해괴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희생과 헌신에 지나치게 의존하기보다는 잘 갖추어진 시스템을 제대로 운영하는 편이 낫다. 구역별로 재활용 분리 장소를 마련해서 그곳에서 분리했으면 한다. 지역 화폐와 연계하여 포인트 제도를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봉사잖아. 봉사하면서 대가를 바라면 안 되지.’
#플로깅 #줍깅 #쓰담달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