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깅 활동으로 ‘쓰레기를 발견하면 주워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예상 밖의 부작용을 경험하고 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줍지 못하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것 같아 불편하다.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느 날은 가벼운 산책을 했다. 더워지기 전에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요구르트 병, 더위사냥 껍데기, 젤리 비닐, 담배꽁초들이 보인다. 하지만 사진을 찍고 데이터를 입력할 휴대폰, 장검같이 기다란 집게, 쓰레기를 담을 봉투까지 장비 일체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쓰레기 옆을 그대로 지나쳤더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처럼 마음이 편치 않다.
며칠 전에는 연천에 드라이브를 갔다. 화덕 생선구이 가게로 들어가 볼락 구이와 통삼겹구이를 주문했다. 이 가게에는 환상의 나라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주문을 받는 말씨에서는 다정함이 묻어나고 음식을 놓아주는 태도에는 여유로움이 흐르고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주는 목소리에서는 배려가 배어 나왔다. 친절함으로 가득한 고운 인상의 직원들이 환하고 밝은 가게 분위기를 따뜻하게 유지해 주는 곳이었다. 식후 마실 커피 머신 옆에 가지런히 정돈해 놓은 세 개의 휴대폰 충전기와 손님들이 먹는 것과 똑같은 크기와 품질의 생선구이 네 마리를 손님에게 살을 발라 주듯 발라 “어서 와서 식사들 하세요.”라고 서로를 챙겨주는 마음씨가 갓 지은 밥에서 올라오는 맛있는 밥냄새처럼 꾸밈없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오렌지를 가져다주었던 머리를 한쪽으로 올려 묶은 직원이 미소를 지었다.
“모처럼 연천에 놀러 오신 김에 근처에 구경하고 가세요. 재연 폭포도 있고 며칠 전에 축제가 끝나긴 했지만 고인돌 유적지도 있어요.”
계산을 하며 직원이 추천해 주었다.
“그래야겠네요. 감사합니다!”
나는 인사를 건네고 나왔다. 하지만 재연 폭포와 고인돌 유적지는 전에 가본 곳이었다. 나는 멀리 않은 곳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카페는 본관과 별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본관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어디 앉으실 거예요?”
주문을 마치자 동그란 눈망울의 직원이 물었다.
“가져다주시나요?”
내가 물었다.
“네.”
직원이 대답했다.
나는 그대로 서서 카페를 둘러보았다. 나무와 밝은 베이지톤으로 마감한 따뜻한 실내는 어디에 앉아도 근사할 것 같았다.
“별관도 있어요.”
내가 빨리 자리를 정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자 직원이 말했다.
“별관도 여기랑 분위기가 비슷한가요?”
내가 물었다.
“그럼 한 번 가보시고 결정하실래요? 진동벨 드릴게요.”
직원이 진동벨을 주었다.
‘여기 이상해. 사람들이 친절해. 눈빛이 다들 순해. 여기 별나라 같아.’
밖으로 나와 붉은 별관을 향하다 시야가 탁 트인 전경을 그대로 멈춰 서서 바라보았다.
‘어릴 때 우리 모습인데.’
잠시 시간을 내 연천의 거리를 걸었다. 연천은 초록색과 하얀색을 섞어 놓은 연두색이다. 때가 덜 탄 연둣빛 들풀들과 들꽃이 한데 어우러져 올라오는 도로 가장자리에 쓰레기가 섞여 있었다.
‘연두연두한 연천에 쓰레기는 어울리지 않아.’
연둣빛 순한 연천에서 쓰레기를 치워주고 싶었다. 장비가 없었다. 처리하지 못한 쓰레기는 찝찝한 상태로 마음에 남았다. 나는 친절한 연둣빛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어느 밤에는 긴 집게로 길가의 쓰레기를 주워 담는 꿈을 꾸었다. 현실에서 주문한 80센티미터 집게는 아직 배송 전이었다. 꿈속의 집게는 주문한 집게와 모양과 사이즈 면에서 98프로 정도 일치했다. 다만 집게 끝이 일자형이 아니었다. 전날 한식 뷔페에서 사용한 끝이 곡선형으로 휘어진 집게였다.
전날 방문한 한식뷔페는 공원을 다닐 때마다 일인에 육천 원이라는 놀라운 가격이 뇌리에 박혀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첫눈에 반한 것치고는 무려 삼 년이라는 시간이 걸려서야 방문하게 되었다. 그새 육천 원이던 가격은 칠천 원으로 인상되었다. 요즘 물가를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주말 점심임에도 식당 안에는 생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보이는 일행들과 누가 봐도 직장 동료임이 확실해 보이는 일행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카운터에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자가 계산을 받고 있었다. 손님이 없을 땐 앉아 있다가 음식바로 다가와 음식이 떨어졌는지 체크하고 주방에 알렸다.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부지런한 행동이 친절한 사람이었다.
학식 이후 삼십 년 만에 너무나도 사랑했던 동그랑땡 같은 납작한 미니돈가스를 만나 반가움에 소리를 지를 뻔했다. 하얀 식판에 미역국과 제육볶음과 돈가스와 가지무침과 볶음 가락국수를 담고 있자니 학식을 담는 기분이 들었다.
“이 식당이 직장 근처에 있으면 매일 올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흥분했다.
이 식당과 플로깅이 대체 무슨 상관이라고 꿈에서 재창조된 것일까, 분석했다.
1) 학식을 먹던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에 이성을 잃고 평소양보다 조금 많이 먹었다. 먹으면서 퇴식구 벽에 붙어 있던 ‘음식을 남기면 무조건 환경부담금 삼천 원을 받습니다.’와 골방의 마법사처럼 근엄한 표정으로 카운터에 앉아 있는 남자를 의식했다.
2) ‘드디어 착한 어른이 된 것 같아!’ 첫눈에 반해버린 기다란 집게를 들고나가 쓰레기를 주워버리고 싶다는 열망이 설렐 일 없는 요즘 이렇게나 설렘을 주었던 걸까.
3) 대단한 맛은 아니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면 계속 이용할 수 있을까.
꿈에 관한 분석을 하던 중 무의식으로 묻혀 들어갈 뻔했던 풍경이 팝업처럼 튀어나왔다. 그곳에서 주말 점심을 먹고 있던 가족은 우리뿐이었다는 것을. 다른 가족은 어디 있을까.
아침에 비몽사몽으로 잘못 읽은 문장,
실은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큰 행복은 친구와 우정을 나누는 것이다.’
‘쓰레기 버린 사람 집에 쓰레기가 고대로 갔으면 좋겠어.’
나의 소중한 친구 지구를 위해 이렇게 중얼거린 적이 있다. 그렇다. 나는 쓰레기를 줍는 선한 순간에도 고운 심성을 버리고 흑화 한다. 이 소재로 소설을 쓰겠다고 제법 구체적으로 구상하고 있다.
쓰레기를 버리면 누가 갖다 놓기라도 하는 것처럼 쓰레기가 방에 와있다. 어디에 버려도 쓰레기는 원주인을 찾아내고야 만다. 인간은 쓰레기를 계속 내다 버리지만 쓰레기는 어디고 따라다닌다. 그러나 나는 부지런한 글쟁이는 아니라서 언제 완성할지는 모르겠고 봉준호 감동이 배배 꼬는 위트와 날이 선 신랄한 풍자로 집에 들어가는 쓰레기를 주인공으로 영화로 만들어 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내가 하는 말은 가장 먼저 내가 듣는다더니!
내가 뱉은 말은 나에게 돌아온다더니! 손수 준비한 20리터짜리 종량제 봉투에 정성스레 주워 담은 거리의 온갖 쓰레기를 내 집으로 가져가고 있다. 아, 이제 또 만지기도 싫은 이 지저분한 것들을 씻고 분리 배출해야 한다. 오늘도 개미가 기어 나오면 어쩌지? 오 마이 갓! 제발 동네에 수도 시설 갖춰진 재활용 분리 배출하는 장소가 생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