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해 보이는 쓰레기 vs 인간의 형상을 한 천사

비우고 얻는 산책

by 비단구름

‘070’ 번호로 전화가 왔다. ‘기기변경센터입니다.’ 멘트가 들리는 순간 더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기기 변경 안내 전화는 일이 주에 한 번꼴로 온다.


‘02’ 서울 번호로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지만 일단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건강보험 및 의료 실비 여론 조사입니다.’

건조한 기계 톤의 여자 목소리가 전화를 받자마자 부어댄다.

‘올해부터 현재 실손 보험 대비 최대 300프로까지 인상안이 발표되어 보험료 변동 여부 등 실손 보험료 관련 여론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먼저 선생님께 남성이면 1번, 여성이면 2번을 눌러주세요,’

예전에 뭣도 모르고 성실하게 응했다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실손 보험 가입 안내 전화를 받았다. 요즘은 개인정보를 대놓고 요구하고, 좋은 일 하는 척하면서 그럴싸하게 돈을 벌어간다.


일전엔 소름 끼치는 문자를 받았다.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로 문자가 왔는데 ‘무료정보방 오픈’이라며 알 수 없는 링크를 발송해서 곧바로 스팸신고를 하고 차단했다. 그런데 몇 주간 지난 뒤 똑같은 이름으로 똑같은 내용의 문자를 다시 받았다. 발신인의 핸드폰 번호는 바뀌어있었다.


최근엔 지방의 지역번호로도 전화가 온다. 오늘 아침에 온 ‘031’로 시작하는 번호도 혹시 몰라 받았다.

“○○님 되시죠?”


내 이름을 알고 있다. 자원봉사센터일지도 모르고, 은행일지도 모르고, 동사무소일지도 모르고, 공원관리소일지도 모르고, 몇 달 전 응모한 경품 행사 주체 측인지도 모르니 혹시나 하고 들어본다.

“네. 그런데요?”

낯선 여자의 목소리에 경계모드를 발동한다. 여자가 '어쩌고 저쩌고' 어디라고 설명을 했는데 매우 빨라 어디라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바쁘시니까 한 가지만 안내해 드릴게요. 탤런트 ○○씨 아시죠? ○○씨가 광고하는 '어쩌고 저쩌고' 아시죠?”

언어영역 듣기 평가 수준으로 빠르게 지나가버린 '어쩌고 저쩌고'가 도대체 어디라는지 또 듣지 못했다.

“저희가 20주년 기념으로 특별 혜택을 드리려고 해요. 월 만 원대로,”


‘월 만 원대’라는 말을 듣고는 ‘죄송합니다.’하고 끊었다. 나는 만구천구백구십구 원의 여유가 없다. 야박하게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해 보았다. 전화번호 목록을 받아 들고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지갑을 열게 해야 하는 전화기 앞은 여자에게 생계를 위한 평범한 직장일 뿐일 텐데. 어쩌면 오늘 아침 스쳐 지나간 이웃일지도 모르는데. 퇴근 후 시간을 내어 어디선가 쓰레기를 줍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플로깅 할 때 가급적 가로수 아래와 화단의 쓰레기는 치운다. 가로수 아래와 화단은 어김없이 담배꽁초들의 무덤이다. 담배꽁초의 원주인은 ‘같이 죽자,’며 나무와 풀 한 포기마저 깡그리 죽여 버릴 심산인가 보다.


놀이터 정자 바닥 가장자리를 아이스크림 비닐과 담배꽁초들이 에워싸고 있다. 모여 있는 담배꽁초들을 자세히 보니 모두 하얀 담배에 청량한 파란 띠가 둘러있다. 담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인심 좋게 나눠준 모양이다. 사이좋기도 하다. 새것처럼 거의 그대로 남은 새우깡봉지를 발견했다. 아무리 봐도 쓰레기 같지는 않다. 새우깡봉지를 주우려다 혹시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건 아닐까, 멈칫한다. 놀이터 화장실에서 곧 나오는 것은 아닐까, 화장실 쪽을 본다. 먹다 반쯤 남긴 빵이 들어있는 빵 비닐도 주웠다. 본인이 앉아 쉬는 곳을 더럽히다니 이상하다. 내일 또 앉을지도 모르는데. 언젠가 챙모자를 쓰고 검은색 팔 토시를 낀 환경미화원이 말했다.


“예전에 비해 쓰레기가 많아졌어요.”

“그러게요. 왜일까요?”

나는 환경미화원에게 물었다.

“민도가 달라졌나 보죠.”

심드렁하게 대꾸한 뒤 남색 조끼를 입은 그녀는 50리터짜리 깊은 바다색깔의 쓰레기봉투에 내가 들고 있던 쓰레기를 버려주었다.


7시 50분. 마실 나가시는 할머니들 예닐곱 명이 정자로 모인다. 일곱 쌍둥이처럼 비슷한 키와 비슷한 체형과 비슷한 짧은 파마머리모양은 그렇다 치고 말투까지 비슷해 깜짝 놀란다. 주거니 받거니 하시다가도 한 명 한 명 나타날 때마다 두 손 들고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이 소녀들처럼 귀여우시다. 벤치에 놓여 있는 페트병을 주우러 다가가자 ‘수고하십니다.’하시더니 페트병과 옆에 나란히 있는 비닐을 얼른 집어 내가 들고 있는 쓰레기봉투에 넣어준다.


일찍 일어난 새처럼 아침 일찍 모여 앉은 할머니들을 뒤로하고 걸었다. 저번 날엔 쓰레기가 적은 이유를 아침이라 그런 거라고 짐작했는데 잘못 생각했다. 오늘 아침은 쓰레기가 많다. 데이터를 입력하다 핸드폰을 단단한 블록에 떨어뜨렸다. 서둘러 핸드폰을 들고 상태를 보았다.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금 참여하고 있는 ‘저탄소 마라톤’ 외에 나는 한 달에 한 번 다른 단체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는데 여럿이 플로깅 할 때와 혼자 할 때는 비슷한 활동을 하면서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여럿이 쓰레기를 주울 때는 고통이 분담된다. 심지어 편하다. 내가 뒷자리에서 따라갈 때는 앞사람이 쓰레기를 다 주워 버려서 눈을 크게 뜨고 쓰레기를 찾아 헤매기까지 한다. 그래도 무리에 섞여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을 듣는 일은 뼈가 되고 살이 된다. 활동 후에 갖는 간단한 식사자리에서 정치, 경제와 같이 심상치 않은 주제들과 강아지 양육하는 법, 고어와 사자성어들, 신변잡기 같은 대화들 사이의 맥을 짚는 일도 즐겁다. 대신 대열에서 낙오되면 안 되기에 생각들이 정착할 새도 없이 부지런히 보조를 맞추어 걷는다.


혼자 하는 플로깅은 여유롭다. 혼자 페이스를 조절하며 나무와 잔디와 화단의 꽃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자연의 일부가 된 것처럼 여유롭게 걷는다. 플로깅 중간에 벤치에 앉아 쉬며 물 흐르듯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할 때면 ‘이런 게 자유인이지.’ 꽤 만족스럽다. 아이러니한 점은 자유로운 고독인인 순간 오히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살아있음이 가득하다. 무리에 섞여 플로깅을 할 때는 누릴 수 없는 사치스러운 감정이다.


오늘도 어떤 여자가 관심 있게 말을 건다.

“어머나, 좋은 일 하시네요.”

“네. 뭐.”

익숙한 어색함이다.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 중 일부는 궁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여자가 묻는다.


“돈 받고 하는 거예요?”

공공 근로 하는 거로 보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한다.

“아니에요.”

“그럼 그냥 봉사예요?”

여자가 화들짝 놀란다.

“네. 그냥 봉사예요.”

“세상에, 이런 훌륭하신 분들이 많아야 세상이 좋아지는데.”


뜻밖에 과찬을 듣는다. 며칠 전에 본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나는 장애인을 직원으로 채용하는 장애인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을 보았다. 어느 동네에서는 위기 가정 아이들에게 안식처가 되어주는 그룹홈을 운영하는 사람도 보았다. 네 명의 아이를 입양해 가정을 선물한 부부도 보았다. 백발의 치매 노모를 모시는 고운 심성의 부부도 보았다.


영화 콘스탄틴에서는 인간의 모습을 한 천사들과 멀쩡해 보이는 악마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간다. 한 시간 남짓 쓰레기를 줍는 행위는 인간의 모습을 한 천사임이 분명한 저들의 고귀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초인적인 힘을 가진 위대한 사람이 나타나 사회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인간들을 쓰레기와 함께 주워 담는 상상을 하는, 나는 그저 조금 더 나아지고 싶어 발버둥 치는 작은 인간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거 하는 사람 많아요. 동네마다 있어요.”

“그래요? 훌륭하시네요.”

역시나 칭찬으로 돌아온다. 여자와 헤어지고 나는 또다시 소소한 생각에 잠긴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많은가 vs 줍는 사람이 많은가’


‘쓰레기는 한 사람이 계속 버리는가 vs 여러 사람이 버리는 것인가’


‘한 번이라도 쓰레기를 버린 적이 있는 사람 vs 한 번도 쓰레기를 버린 적 없는 사람’


‘선한 사람이 많은가 vs 악한 사람이 많은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 많은가 vs 해롭게 하는 사람이 많은가’

걷다 보니 1.8킬로미터를 걸었다. 적어도 내가 지나간 길이 깨끗해졌기를 바란다.



#플로깅 #줍깅 #쓰담달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