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스승들

버리고 줍는 산책

by 비단구름

오늘도 50인의 사람들은 각자의 동네에서 발품을 팔며 선한 영향력을 행사 중이다. 톡방에 올라온 사진 속엔 집게와 종량제 봉투를 들고 있는 어린이들도 보인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여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오늘은 거리가 깨끗한 편이다. 아침 일찍 나와서 그런 것일까. 쓰레기를 무려 천 개 가까이 주웠다는 활동 후기를 보고 놀란다. 백 개 언저리를 간신히 채우는 나는 아무래도 경로를 잘못 정했는지도 모른다. ‘역시 학교 앞은 깨끗한 편인지도. 다음 달엔 경로를 바꾸어야 할 거 같아.’


‘가지고 있기엔 더럽고 귀찮으니까 버리는 거겠지.’ 싶으면서도 어질러진 집안을 정돈하는 것처럼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거리의 쓰레기들을 줍고 있다 보면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있는 지구의 폐기물 수거처리 로봇 월-E가 떠오른다. 월-E를 보았을 당시에는 머지않아 지구에 산처럼 쌓여있는 쓰레기를 상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많고 많은 쓰레기가 어디로 가야 할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도 든다. 나는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가, 나쁜 세상에 살고 있는가. 이분법적이고 단순한 생각은 편하지만 오류가 많다. 하지만 나는 단순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복잡하고 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도 단순하게 풀어나간다. 오류투성이지만 오류 많은 삶마저도 단순하게 대하다 보니 사람들은 내가 세상 복을 다 가진 줄, 나라는 사람은 세상 편하게 사는 줄 안다. 오해하는 그들도 실은 꽤 단순하게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고 판단한 것이다. 사람 사는 것은 다 거기서 거기거늘. 내 내면은 경험의 모자이크이며 자르고 붙인 기억의 콜라주다.

일단 두 가지의 고민이 있다.


<큰 고민 1.>


매일 거리에 버려지는 쓰레기들.


의문이 이어진다. 아주 간단한 의문이다.


Q1, 누가 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가?

Q2, 왜 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가?

<큰 고민 2.>


매일 발생하는 쓰레기들.


Q1,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는 것 -----> 실현불가능

Q2, 쓰레기 발생을 줄이는 것 -------> 실현가능

Q3, 쓰레기 재사용하는 것 ----------> 실현가능


<해결방안>


Q1. 쓰레기를 자발적으로 거리에 버리지 않기?

----> 가능할까? --------------------> 어쩌면

Q2. 거리에 쓰레기통을 설치하면 거리의 쓰레기가 줄어들 것인가?

-----> 거리 미관과 쓰레기통 주위의 악취 및 위생 문제 발생

Q3. 봉사에 의존?

1) 쓰레기 버리는 사람 < 봉사자 --------> 봉사활동으로 환경정화 어느 정도 가능

2) 쓰레기 버리는 사람 > 봉사자 --------> 봉사에 의존하기보단 지자체나 중앙정부 차원의 제도 보완 필요

Q4. 강력한 벌금???? -------------------> 사람들의 선한 힘을 믿고 싶다.

Q5. 방송매체의 힘 빌리기? -------------> 나영석 피디나 유호진 피디가 플로깅 예능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프로그램명은 ‘별의별 쓰레기들’


<특별고민>


Q.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 내가 참여하고 있는 활동은 ‘저탄소 마라톤’으로 궁극적으로 환경보호활동이다.(‘저탄소 마라톤’의 의미가 쓰레기를 줍는 모든 행위를 포함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거리에 쓰레기 버리지 않기 캠페인’이나 ‘거리 깨끗하게 하기’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재활용과 상관없는 온갖 쓰레기를 줍고 있다 보면 제발 거리나 야외에 쓰레기를 마구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든다.

나는 충분한 혜안도 깊은 통찰도 부족하기에 제대로 된 원인도, 속이 시원해질 해법도 알지 못한다. 나의 플로깅 활동은 어느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잘 모르겠으니 계속 쓰레기를 주워야겠다. 일단은 그냥 하던 대로.


쓰레기를 주울 때 나름의 기준이 있다. 남의 집 앞, 남의 가게 앞은 치워주지 않는다. 잘 먹고 잘 살려면 내 방 정리는 내가 하고, 내 집 앞은 내가 쓸고, 내 가게 앞은 내가 치워야 한다. ‘나 지금 너무 꼰대 같다.’


어느 상가 주택 앞 아담한 일층 꽃가게 앞에 분필로 아기자기하게 손글씨가 쓰여 있다.

‘출산 휴가 다녀올게요.’

아가를 맞이해 너무 기쁘다고 꽃향기가 사방천지로 퍼지는 것 같다. 가게 앞 블록에 떨어져 있는 ‘일수’, ‘대출’ 명함과 담배꽁초를 주워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플로깅을 하다 이십 미터쯤 거리를 두고 낯선 여자를 만났다. 여자는 쓰레기를 줍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선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곧장 다가왔다.

“세상에, 다니면서 쓰레기 줍는 사람 처음 봤어요.”

여자는 칭찬 비슷한 표현을 했다.

“네.”


나는 칭찬을 받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겸손한 태도인지 아직도 어렵다. 겸손하면 내숭이라 그러고 당당하면 겸손하지 못하다 그런다. 그래서 긴 대답대신 모나리자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재수 없어 보이지 않으면서도 겸손하게.


“정말이에요. 살면서 처음 봤어요.”

직업으로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 외에,라는 표현일 거라고 짐작한다.


“나는 담배꽁초를 보면 담배꽁초 버린 인간들 입에 그대로 들어가는 상상을 해요.”

나는 깜짝 놀랐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내가 무언의 긍정으로 잠자코 있자 여자가 말을 계속했다. 여자는 화장을 하지 않은 맨얼굴이었다.

“개똥도 마찬가지예요. 개똥 버린 사람 주위에 개똥으로 가득한 거지요.”

상상만으로도 여자는 신나 보였다. 하지만 나는 상상하자 우엑, 더럽다고 느껴졌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개 키우는 사람들 전체가 싸잡아 욕을 먹어요.”

내가 거들었다.

“그래서 나는 개똥은 꼭 주워요. 쓰레기는 줍지 못하지만요.”


여자는 내 옆에서 자연스럽게 함께 걸었다. 걸으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었으나 꽤 간략하게 요약을 해주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상상해야 했다. 여자가 화단에서 까맣게 말라가는 개똥을 주웠다. 여자는 주운 개똥을 내가 들고 있는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나는 비위가 상했지만 티 내지 않고 참았다. 나는 이름도 나이도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여자와 이십여분을 떠들었다. 주로 여자가 말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는 생면부지의 사람이 말을 걸게 하는 재능이 있다. 나는 종종 처음 보는 사람에게 붙잡혀 길거리에 서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입시나 취업에 아무 상관도 없고 영향도 끼치지 못하고 반영도 안 되는 재능이다. 가끔 뭘 얻어먹는 날도 있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사람들이 먹을거리를 선뜻 내어 주는 것이다.

그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호의와 더불어 내게 많은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아들, 딸, 며느리 이야기, 외국에서 살았던 이야기, 강아지 키우는 노하우, 사업했던 이야기. 한때 남부럽지 않게 잘살았던 이야기, 억울한 이야기, 분한 이야기. 나는 인생의 선생님들이 불쑥 내 앞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믿는다. 내게 전할 말이 있어서 말을 거는 것이라고. 나는 그들 덕에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삶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삶 앞에 겸손을 배운다. 나는 그들에게서 돈으로도 못 바꿀 값진 교훈을 얻는다. 그래서 그들이 내 앞에 불쑥 나타나면 누가 보면 아는 사람 만난 것처럼, 누가 보면 되게 친한 것처럼, 정겹게 티키타카를 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플로깅 #줍깅 #쓰담 달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