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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May 29. 2023

정신과 맛집

(마음이 힘들때 도움 받아요.)

오늘 좋은 기사를 보았다.

예전에는 정신과에 가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위기였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심각한 정신질환뿐만 아니라 일상을 불편하게 만드는 불면증,  일정기간 지속되는 우울이나 불안에도 정신과에 가는 사람들이 많다.


내 주변에 건강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도 때론 정신과에 가서 상담받거나 약을 타서 먹기도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과에 소화불량에서 암환자까지 다양한 질환의 환자가 있는 것처럼 정신과도 그렇다. 내과에 암환자, 말기 신부전증 환자도 치료받는다고 해서 내과에 가는 모든 사람이 그 질병으로 악화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정신과도 저마다 다른 각자의 증상에 따라 필요한 범위에서 치료를 받고 회복하는 곳이다.



정신과에 가는 사람은 마음이 튼튼하지 않아서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정신건강의학 관련한 어떤 위원회의 위원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정신과 전문의 선생님들 중에도 내면의 성장을 위해 상담을 받거나 때로는 약물의 도움을 받는 분들이 계셨다. 어떤 분은 그런 사실을 유쾌하게 말씀하셨고, 오히려 환자로서의 경험이 진료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하셨다.


어린 아이들을 보면 아직 사회생활을 하기 전인데도 성격이 천차만별이다. 나는 아들이 어릴 때 동네 놀이터에 자주 나갔었는데, 다른 아이들이 정글짐 꼭대기에 올라가서 뛰어내리거나 과감하게 노는데 내 아들은 이것저것 무섭다고 하면서 조심조심 놀았다. 정글짐에서 떨어질까 봐 불안한 아이도 있고, 높이 올라가서 뛰어내리는 것에 짜릿함과 성취감을 느끼는 아이도 있는 것이다.


그처럼, 원래 불안과 긴장이 높은 사람이 있고, 무던한 사람도 있다. 소심한 사람은 섬세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잘 배려하고 공감능력이 높은 장점도 있고, 멘털 갑 중에는 성격장애가 의심스러울 정도의 사람도 있다.


어떤 정신과 원장님은 내게 "정작 정신과에 와야 할 성격장애가 있는 분들은 안 오시고, 그 주변사람들이 정신과에 온다."는 농담을 하셨다. 정신이나 마음도 사람들이 체질이나 체력이 다른 것처럼 각자 타고난 기질과 성향도 있고, 때로는 상황이나 인연으로 인해 힘들어서 정신과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다.


이비인후과에 자주 가는 사람들이 있다. 남들은 어쩌다 한 번씩 가는데, 비염이 있거나 기관지가 좋지 않아서 환절기만 되면 이비인후과에 가는 사람들.


그런 다른 과처럼 정신과도 일상을 유지하고, 방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가는 것이다.



저번달에 친정어머니가 올라오셔서 함께 길을 걸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건강이 안 좋아지셨고 협심증과 안검연축으로 치료받고 있다. 친정어머니의 눈이 자꾸 감겨서 내가  팔짱을 끼고 조심조심 산책했다.


이후 나는 내면에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이 생겼던 것 같다. 그러던 와중에 어떤 피고인으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그 피고인은 재판 때 한번 출석을 하지 않았다. 그날 재판시작 전 피고인에게 어디까지 왔는지 전화를 할 때 내 업무용 폰이 아닌 개인휴대폰을 사용하게 되어 휴대폰 번호가 노출되었다. 그는 내가 변론한 1심에서 무죄를 받았고, 검사가 항소해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었다.


그 피고인은 다른 사람을 조롱하고 모욕적인 메시지를 보내서 재판을 받게 된 사람이었는데, 나에게도 그런 문자를 보냈다. 그 문자 내용에는 '돈을 못 버는 국선이나 하는 주제에' 같은 내용도 있고 욕설이나 모멸감을 주는 내용도 있었다.


문제는 한두 번에 그치지 않고 여러 번 왔다는 것이다. 나는 어머니 건강걱정에다가 앞으로도 문자가 오면 이 스트레스를 내가 어떻게 감당하나 하는 불안감이 더해져 잠을 잘 자지 못했다.  내가 그를 고소해서 기소된다면 또 동종의 별건이 있다는 것이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겠지만 내가 맡았던 그 피고인의 사건이 아직 확정도 되기 전에 한때 변호인으로서 피고인을 고소한다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일단 나는 나의 일상이 이 불안감 때문에 방해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기도명상독서는 내 불안에 즉각 효과를 주는 방법이 되기 어려웠다.


나는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정신과를 검색해서 찾아갔다. 내성이 없는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처방받았다.


내가 자꾸 의존성, 내성에 대한 질문을 하자 원장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고혈압이 있어서 혈압약을 20년 넘게 먹고 있어요. 이 약을 오래 먹으면 내성이 있다고 한들 고혈압이 있는데 약을 안 먹으면 되겠습니까.

그 말씀을 듣고 '그래, 나는 지금 불안하지. 약을 먹어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원장님께서는 어머니 얘기를 들려주셨다.

원장님의 어머니는 40대에 남편을 잃고, 홀로 자녀들을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 슬픔으로 힘들어했다. 노년을 원장님 부부와 함께 살았지만 원장님 부인이 암에 걸리시면서 따로 살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아들이 어머니를 사랑해도 어머니의 팔자를 바꿔드릴 순 없었어요.
하지만 어머니의 슬픔을 줄여드릴 수는 있었습니다.


원장님은 내게 처방한 약을 어머니께서는 아주 오랫동안 드셨지만 현재 건강하게 잘 지내신다고, 잠깐 먹는 것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나는 그 약을 먹고, 그 피고인으로부터 모욕적인 문자를 한번 더 받았으나 일상을 방해받지 않고, 아들의 애착인형 군데군데 터진 곳을 꿰매는 중요하고도 섬세한 작업까지도 평온한 마음으로 해냈다.


피고인의 전화는 수신차단했고, 고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연락하지 않았다.

현재까지 받았던 문자에 대해서 내가 고소하지 않았다고 해서 자괴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다.

나는 그를 불편하게 하거나 처벌받게 하는 여러 방법들을 알고 있다. 고소도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그게 내 우산이다.


우산이 있는 상태에서 비를 맞았기 때문에 괜찮다.

앞으로는 비가 올 것 같으면, 흰 바지 안 입고 우산을 미리 챙기면 되지.

이상, 나의 정신과 맛집에 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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