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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Mar 24. 2024

등대장학회

나는 바다를 접한 작은 도시에서 자라서 등대를 볼 일이 종종 있었다.


등대는 길을 인도하는 역할보다는 위험한 해안선, 험난한 여울이나 암초를 피하고 항구의 안전한 입구를 찾을 수 있도록 '여기까지는 오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기이다.


배가 오지 말아야 할 마지노선을 알려줌으로써  배를 지켜주는 것이다.


사람의 인생에도 등대가 있다. 엎드러지지 않도록 마지노선이 되어 주는 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기회나 공부, 또는 종교일 수도 있겠다.


나의 아버지는 중학교만 졸업하셨고  마지막 직업은 경비원이셨다. 어렵게 사시면서도 자식들을 잘 교육시키면 이 아이들이 부자는 못되어도 가난은 끊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자식들을 공부시키셨다.

[아버지가 나에게 보내신 편지]


나의 수험생활은 쉽지 않았고 잘 풀리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아버지가 어떤 고생을 해서 공부를 시키고 있는지, 자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을 평생의 사명으로 여긴 아버지의 순박한 희망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가 없었다.

나는 집중력도 부족하고 산만했으며 스마트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내 삶에는 험난한 여울과 암초를 피해서 안전한 항구로 갈 수 있도록 늘 같은 자리에서 불빛을 보내준 등대가 있었다.


교육을 많이 받거나 공부를 잘한다고 인생을  더 잘 사는 것도 아니지만, 교육의 기회나 공부를 지원해 주는 것은 최소한 빈곤을 끊을 수 있고 더 나은 환경으로 갈 수 있도록 사다리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개하고 싶은  장학회가 있다. 아래는 이 장학회 장동익 이사장님의 인사말이다.

등대 장학회 이사장 장동익입니다.

저는 무기수였습니다.

입에 담지도 못할 끔찍한 누명을 쓰고
21년을 교도소 안에서 지냈습니다.

사는 게 지옥이었고,
세상이 원망스러웠던 날이
더 많았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던 절망의 끝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희망의 빛을 보게 되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저희는 많은 분들 덕분에 누명을 벗었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 손 내밀어 주는 단 한 사람만 있다면,
그 어떤 절망의 끝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칠흑 같은 어둠도 작은 불빛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소중한 경험을
이제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의지할 곳 없는 청소년들을 위해 여기, 작은 등대를 세웁니다.


1991년 경찰의 고문과 폭행에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1년여간 옥살이를 했다가, 2021년 2월 박준영 변호사님이 변론한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낙동강변 2인조’, 최인철 장동익 님. 그리고 ‘이춘재 8차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 님, ‘삼례 나라슈퍼’ 사건 피해자 최성자 님 등 박준영 변호사님을 통한 재심으로 새 삶을 살게 된 재심 당사자들이 모여 장학회를 만들었다. 장학회 이름은 등대장학회이다.


설립을 위해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출연금(5억 원 이상)은 이분들이 국가로부터 받은 형사보상금, 손해배상금으로 채웠고, 그동안 아이들을 위해 기부해 오다가 더 많이, 더 오래, 더 체계적으로 돕기 위해 마음을 모았다고 한다. 박준영 변호사님과 여러 좋은 분들이 무보수로 이사와 감사를 맡고 계신다.

     

‘등대’라는 이름은 최인철 님이 지었다고 한다. 장학회가 어두운 밤바다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등대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빛이 되는 단체가 되기를 바라는 바람, 우리 사회 곳곳에 인정 넘치는 사람들이 있고 더 확장될 수 있다는 희망을 나누고 싶은 바람을 담아서 지은 이름이다.


나에게는 다행히 등대가 있었지만,

세상에는 누군가 이제 등대가 되어주어야 할 아이들이 많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고서도

이 사회에 분노를 품지 않고,


절망 속의 아이들에게 작은 불빛이 되어주겠다는 마음으로

장학회를 만들어 선한 삶을 살아가는 분들께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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