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몬스테라 Nov 09. 2024

거대한 존재와 싸움을 시작할 때 - 애호박국, 두루치기

나는 이제 얼굴에 점 하나 찍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정했다.

어제 정신과 원장님께

알콜중독 치료를 받고 싶습니다.

라고 말씀드렸어. 의지로는 안 된다고.


원장님은 평소 나에게 알콜중독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어. 아무래도 내가 원장님보다 덜 마셔서 그럴 수도 있고

주종이 맥주이고 양 때문일 수도 있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고도적응형 알콜중독자라서 그런 편견을 가질 수도 있지.


다들 나보고 묻거든. 운동하고 일하고 요리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여기저기서 보이는데 대체 술은 언제 마시는 거냐고.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는 내가 제일 잘 알고. 또치도 알다시피 우리 집에는 신내림보다 더 무서운 '술내림'이 있잖아.


그 술내림을 할아버지 형제 중 할아버지만, 아버지의 7남매 중 아버지만, 아버지의 자식인 우리 삼 남매 중 나만 술을 마신다는 거.


이제 나 자신에게 떳떳하고 동네 롯데마트 점원과 집 앞 GS25 사장님한테도 떳떳하고 싶고 건강한 삶을 살고 싶어.


내가 원장님께 도와주세요라고 하니 평소 온화하고 동네 아저씨 같은 모습으로 날 대하시던 원장님이 갑자기 정신과 원장님을 연기하는 사람처럼 진지해지시더니


날트렉손 사용에 동의하십니까. 라고 말씀하시더라고.


그러면서 종합병원 정신과에 계실 때 수많은 알콜중독 환자를 만났지만  치료가 된 사람은 없었다며


"우리는" 죽을 때까지 거대한 존재와 싸워야 합니다.

라고 하셨어.

(((우리요??)))


어쨌든 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원장님의 도움을 받아서 내 요양급여 내역에 알콜사용장애나 알콜의존 상병명이 기재되더라도 이 거대한 존재와 싸워나가려고 해.


단 한 번뿐인 이 소중한 생을 위해.



오늘 아침부터 약을 먹었어.

그런데 약을 보니까 약이 많고 막 눈알만 한 약도 있는 거야 꼭 쏠라씨같이 큰 거.


'이게 술보다 간에 더 안 좋을 거 같네.'

멀쩡한 사람도 이 약을 먹으면 막 식은땀 흘리면서 손도 떨 것 같고 영 그렇더라고.


그래서 나는 내가 이 약을 먹기 전에 나 자신을 위해 음식을 해주고 싶었어. 어릴 때 엄마가 애호박을 채 썰어서 국 끓여 주시던 게 너무 먹고 싶은 거야.


내가 얼마 전에 엄마한테, "엄마는 내일 이 세상이 멸망한다면, 우리 모두가 다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안다면 어떤 음식을 먹고 싶어? 난 애호박국이랑 김국." 이랬거든? 엄마가 어릴 때 해주던 게 생각나서.


그런데 엄마는 진짜 내일이 망한다는 상상을 진지하게 했는지 급 다운되면서 그 판국에 밥이 입에 들어가냐고 했어. 아무것도 먹지 않을 거래.


어쨌든 그 정도로 애호박은 내 영혼의 음식 같은 것이기도 해.


거대한 존재와 싸울 때는 간단한 것을 해야지, 육개장 같은 것을 하면 육개장 요리 자체가 거대한 존재라서

싸움 시작 전에 나가떨어지는 수가 있어.


평소 코인육수를 사용하다가 오늘은 멸치와 다시마, 건표고를 넉넉히 넣고 충분히 육수를 냈어. 멸치를 이렇게나 많이 넣어도 되나 싶게 넉넉히 넣으면 국숫집 육수처럼 깊고 진한 맛이 나.


[애호박국]

1. 육수를 낸다(멸치로 육수 낼 것이면 그냥 넉넉히 물 붓고 멸치를 재벌처럼 넣고 건표고나 건다시마가 있으면 넣어. 코인육수 넣으려면 물 700ml 기준 코인육수  알).

2. 육수물이 팔팔 끓을 동안 애호박을 채 썰거나 채 로 썰어.

3. 채 썬 애호박을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한다.

새우젓은 두 숟갈을 넣은 다음 간을 보고 조심스럽게 조금 더 넣어.

새우젓이 없으면 소금과 국간장을 반반해서 간 해.

4. 두부가 있으면 넣어주고. 애호박만 힘이 빠지면 떠서 먹으면 됨.


건강해지는 맛이야. 육수도 맛있고 애호박도 달큼하고. 두부까지 넣으면 단백질도 함께 섭취하는 것 같아서 뿌듯해.



[돼지고기 김치 두루치기]

1. 돼지 앞다리살 두 근을 기준으로 할게.

제육양념은 고추장 1 숟갈, 고춧가루 1 숟갈, 마늘 반숟갈, 양조간장 2 숟갈, 진간장 1 숟갈, 매실액 2 숟갈.

이게 내 레시피이긴 한데,

힘들면

이런 것을 사용해 봐.

2. 김치(신김치가 좋음)를 썰어서 양념돼지고기와 섞고

3. 웍에 식용유 두르고 볶아.


그냥 제육볶음을 먹어도 맛있지만 나는 이렇게 김치를 넣어서 두루치기로 먹으니까 더 맛있었어.

내가 좋아하는 거야.


나는 애호박국과 두루치기를 먹고 약을 삼켰어.


그리고 오늘 내 글터디 친구들과 인왕산에 오를 거야.  난 할 수 있다.

[영화 '밀정'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