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 토요일. 나는 진주에서 독서모임을 마친 후 서울로 올라오고 있었다. 진주역에서 ktx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와서 서울 수서역으로 향하는 srt기차로 환승했다.
그날 나는 며칠 전부터 몸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내 좌석은 문 바로 앞 좌석이었고 등이 문을 향하는 방향에 있었다.
나는 통로 측이었고 창가 자리는 비워져 있었다. 내 좌석과 문 사이에는 캐리어를 넣을 수 있는 공간 정도가 있었는데, 어느 역에선가 남녀가 그 자리에 나란히 서서 가기 시작했다.
때로는 너무 피곤해도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다. 몸은 노곤한데 잠도 오지 않았고, 휴대폰을 쳐다볼 기력도 없었다.
나는 비스듬히 다리 꼬고 앉아서 의자에 안기듯 기대서 창밖을 멍하게 보고 있었다.
내 좌석 뒤의 남녀를 쳐다보지는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듣게 된 그들의 대화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은 자녀가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는 기혼자였고 둘은 대학 때 친구 같았다.
여자는 끊임없이 남자에게 이 친구 저 친구 안부를 물었다. 남자는 대학 친구들 모임에 자주 나가는 것 같았고, 여자는 이번에 친구가 상을 당해 오랜만에 친구들을 보게 된 것 같았다.
남자는 주로 대답하는 편이었고 여자가 주로 질문했다.
"딸이 초등학생이야? 음악 미술 체육 같은 거 재능 있는 거 있어?"
그러면 남자는 "몰라.. 이것저것 하긴 하는데.." 이런 식이었다.
여자의 아이들이 남자의 아이들보다 더 큰 아이들 같았다. 여자는 자신이 학부모로서 알게 된 모든 정보를 속성으로 남자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특성화고에 가서 공부를 열심히 하면 내신도 잘 나오고 좋은 대학 가기가 더 유리하대."
"특성화고?"
"뭐 디.. 디 머 그런 고등학교 있잖아 왜."
나는 비스듬히 의자에 기대서 마치 거대한 고기처럼 가만히 있었지만 본의 아니게 그들의 대화에 무언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내가 '디지털고 이런 이름 말하는 건가?'하고 생각한 순간
여자는 남자에게 "아, 생각났다. 디지털고 이런데 있잖아.. 특성화고."라고 말했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쫒으며 나름의 의견을 무언으로 내기도 하였으며, 이건 아니다 저건 맞다 반대와 동조도 하고 있었다.
여자가 많은 얘기들을 하는데도 남자는 별 말이 없었다. 여자가 조용히 이야기하긴 했지만 남자는 사람 바로 뒤에서 대화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 같았다.
갑자기 남자가 여자에게 질문했다.
"남편분은 저번에 중국 주재원으로 나간다고 했었나?"
그러자 여자가 머뭇하듯이 가만있다가 말했다.
"남편은. 작년에. 돌아가셨어."
남자가 놀라고 당황한 듯했다. 남자가 미안하다고 하자 여자는 뭐가 미안하냐고 했다. 남자는 여자에게 "나한테 말을 하지.. 그럼 애들이랑 같이 갔을 텐데.."라고 말했다. 여자는 대학 동기들에게 남편상 부고를 알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뭐? 돌아가셨다고? 애들이 아직 초등학생 중학생인데!'라고 생각하며 놀랐다. 그래도 내 자세는 바뀌지 않았지만 나는 더욱 깊숙이 의자를 파고들었다.
여자는 담담히 말했다.
"남편이 중국 출국을 앞두고 몸에 결석이 있어서 그걸 제거했는데, 의사가 결석 색깔이 이상하다는 거야.. 그래서 검사를 했더니.."
나는 '헉. 설마 췌장암?'하고 생각했다. 얼마 전 돌도 안된 아기를 둔 1986년생 남자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발견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가셨다는.
여자가 말했다. "담낭암이었어."
여자의 남편은 담낭암을 발견하고 수술했으나 이후 재발했고 상태가 악화되었다고 한다. 재발 이후 직장을 쉬고 집에서 투병했었는데 남편이 사춘기 아들과 많이 부딪쳤다고 했다.
"그때 아이들한테 아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지 못했어. 남편은 집에서 사춘기 아들 모습 보면서 답답하니까 잔소리를 하게 되고 아들은 아빠가 집에서 사사건건 간섭하니까 삐뚤게 나가고.. 우리는 아들이 알면 더 예민해지고 방황할까 봐 아빠 아픈 거 말을 안 했었는데, 아빠 가고 아들이 너무 슬퍼하는 거 보니까 그때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싶고..."
여자가 숨죽여 흐느꼈다. 나는 순간 돌아서서 여자를 안아줄 뻔했다. 내 가방 속에는 휴지가 있는데 우리가 그걸 주고받을만한 관계는 아니라는 것이 아쉬웠다.
남자는 여자에게 네가 많이 힘들었겠다,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냐며 끊임없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우리가 요즘은 자주 못 봤지만 오래 보고 지낸 친구들이잖아. 말해주었더라면 좋았을걸.. 나는 네가 그렇게 힘든 일을 겪는지 몰랐어."
여자는 힘든 일을 혼자서 치르고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쉬지 않고 일을 하는 일상, 아이들에게 아빠가 필요한 때 느껴지는 남편의 부재와 앞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듯 떨렸다.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여자의 고단한 일상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던 듯이 처음에 웃으며 수다스럽게 남자에게 이야기하던 그녀에게 "저기요, 좀 조용히 해주세요."라고 하지 않은 나를 칭찬했다.
그녀가 아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땐 슬펐다. 아들은 아빠가 집에서 투병할 때 아빠와 다투다가 아빠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한 것 같았다. 후회하는 아들을 가엾게 생각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 손가락이 저릿해져 왔다.
남자와 여자가 동탄역에서 내릴 때 나는 뒤돌아서 무언가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은 것처럼 하는 것이 내가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 같아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기주, 언어의 온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