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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Jun 18. 2021

피고인 딸의 초등입학 가방을 사다.


코로나 직전의 일이다.
구속된 피고인의 접견을 갔다.


이 남자 피고인은 지금까지 아무런 전과가 없었다.

이혼 후 부인은 딸을 이 피고인에게 맡기고 떠났고 피고인은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아이를 키웠다.

피고인의 아버지는 거동할 수 없는 상태로 24시간 어머니의 간병이 필요한 환자였다.

피고인은 일을 해서 부모님과 딸을 홀로 부양하고 있었다.


열심히 살던 그가 지인의 권유로 잠깐 했던 아르바이트 때문에 법정에 서게 되었다.

범죄의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해도 공범으로 엮여 버리면

주범이든 꼬리이든 다 똑같은 입장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그는 내가 갔을 때 자신의 구속으로 생계의 위협을 받을 가족을 생각하며 발을 동동 굴렸다.
아이는 엄마 아빠 모두와 떨어져 자라기엔 아직 어리고,

아버지는 편찮으시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간병과 손녀의 육아로 지쳤고,

거기에다 그들은 너무나도 가난하여 비참한 상황을 잠시 잊을 마음의 여유도 가질 수 없었다.


피고인은 구속 전 딸의 취학통지서를 받았다.
딸의 초등학교 입학을 보지 못하고 앞으로도 한참 떨어져 있어야 하는 피고인은

"딸이 초등학교 입학하는데..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정말 잘해주려고 했는데.."

이런 말을 반복하면서 울었다.


그는 처음에는 훌쩍이다가 나중에는 꺽꺽거리면서 울었다.

탈진할 정도로 울어서 상담이 불가능했다.

눈물 콧물 흘리며 어깨를 들썩이고 우는 피고인을 한참 쳐다보다가 물었다.


“딸은 아빠가 어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나요.”
피고인이 말을 어눌하게 하면서 헉헉 울었다. “멀리.. 멀리. 외국에.. 일하러”


제가 아빠가 보낸 것으로 해서 작은 입학 선물을 보내 줄게요.

피고인의 울음이 살짝 수그러졌다.


“딸에게 보낼 편지를 제 사무실에 보내 주세요. 선물을 사서 포장하고 아빠 편지를 동봉해서 어머니께 보내 드릴게요. 아이에게 아빠 입학 선물이라고, 전달해달라고 어머니께 당부드릴게요.”


피고인이 그제 서야 울음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정말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얼마 후 사무실에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편지가 도착했다.
'사랑하는 우리 딸 00야'로 시작하는 그 편지에는
엄마가 떠난 뒤 아픈 할아버지와 마음의 여유가 없는 할머니 아래에서

이제는 아빠도 없이 지내야 할 딸에 대한 미안함과 슬픔, 그리움과 애정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나는 아들밖에 없기 때문에 딸을 키워보지 못했지만,
이번엔 여자아이의 입학 선물을 사러 외출을 했다. 내 딸이 입학한다면 어떤 가방을 살까 고민하며.


이것저것 파격적인 디자인과 색깔의 가방을 두고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분홍색을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가방과 신발주머니, 예쁜 머리핀을 여러 개 사서
피고인의 편지를 외국에서 보내는 아빠의 편지로 함께 끼워 넣어 포장했다.


우체국에서 보내는 사람의 주소에는 ‘변호사’나 '법률사무소'라는 글자를 쓰지 않았고

아이가 상자를 보더라도 아빠의 일을 국내에서 도와주는 사람 정도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하여
피고인의 어머니에게 보냈다.


이후 피고인의 재판도 끝났고
피고인의 딸은 입학했다.

그리고 잊을만할 즈음 피고인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편지에는

딸의 입학을 준비해주어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오로지 딸만 생각하며 죽을 각오로 열심히 살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지금은 그때 입학했던 딸이 아빠랑 살고 있겠다.
피고인이 구치소 접견실에서
딸의 입학을 준비해주지 못하고 구속되었다며 오열하던 그날을 잊지 말고

부디 잘 지내기를 바라본다.


딸이 없는 나는,
그 아이의 입학 선물을 사기 위해
딸이 있는 엄마들의 기분은 이런 것일까? 생각하며
머리핀을 고르고 가방을 고르면서 정말 신나고 행복했었다.


그래서 그 피고인은 나에게 신세 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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