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나 혼자 산다>와 같은 간판 예능을 필두로, 방송계는 최근 몇 년 간 일상적인 소재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집에서 보내는 평범한 나날을 그려내는 방송 프로그램들이 주목을 받는 것은 이제 그리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근래의 MBC 프로그램들을 돌아보던 중 기존의 트렌드에서 한 발 더 나아간 흥미로운 시도를 포착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흥행작들이 ‘누가’ 집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주목했다면, 최근의 작품들은 ‘집’이라는 공간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아주 독특한 공통점을 가진 두 프로그램이 눈에 띄었다. MBC 공식 유튜브 채널 <오느른>과 다큐플렉스 <빈집살래>다.
<오느른>과 <빈집살래>는 많고 많은 집들 중 독특하게도 ‘빈집’에 주목한다. ‘집’을 소재로 한 MBC 프로그램의 대표주자 격인 <구해줘! 홈즈>가 좋은 집의 조건을 두루 갖춘 엄선된 매물들을 소개하는 데 반해, <오느른>과 <빈집살래>의 주인공은 당장 허문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낡은 집들이다.
이제부터 두 프로그램이 ‘빈집’이라는 색다른 소재를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또 각 콘텐츠의 핵심 매력은 무엇인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이미지 출처: MBC
브이로그찍는시사교양 PD, 빈집에숨을불어넣다
최근, MBC 1호 유튜버가 탄생했다는 소식이 매스컴 상에서 큰 화제가 됐다. 전라북도 김제에 위치한 4500만 원짜리 폐가를 덜컥 매입해 ‘시골살이’를 시작한 최별 PD가 그 주인공이다. 유튜브 생태계를 휩쓸고 있는 자극적인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그저 평화롭기만 채널 <오느른>은 놀랍도록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인기 영상의 조회수는 무려 232만 회에 달한다. 낡은 빈집을 고치며 시골 생활에 적응해가는 한 PD의 이야기가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비밀은 마치 하얀 도화지 같은 ‘빈집’의 매력에 있다.
겉보기에 그저 여느 시골의 오래된 집들과 다를 바 없는 낡은 공간일 뿐이었는데, 사람의 손길이 더해지자 작은 초가집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단순히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정도가 아니다. 초라했던 집은 순식간에 추억과 취향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멋들어진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집 안 어느 곳도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구석이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랑스러운 보금자리다. 만약 김제의 집이 얼룩 하나 없이 깔끔한 신축 주택이었다면, 지금만큼의 정성과 애정이 깃든 공간이 되지는 못했을 거다. 이미 잘 꾸며져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는 것과 달리, 오랜 시간 방치되어 뼈대만 남아버린 집을 다시 활력이 넘치는 공간으로 되돌리는 작업은 어찌 보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다. 때문에 주인의 의도에 따라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이 ‘빈집’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오느른>의 김제 집은 최 PD가 상상력을 발휘해 빈집이 품은 이러한 잠재력을 잘 살려낸 덕분에 새 생명을 얻었다.
이미지 출처: 유튜브 채널 <오느른> 캡처
빈집으로내집마련, 얼마나쉽게요~?
<오느른>의 이야기가 어느 한적한 시골에서 시작한다면, 다큐플렉스 <빈집살래>는 도심 속 빈집들에 주목한다. 멀지 않은 곳에도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는 ‘보물들’이 참 많이 숨어 있었다. <빈집살래>에 등장하는 낡은 집들의 변신은 최 PD의 김제 집보다 한층 더 극적이다. 뼈대만 가까스로 남은 채 무너져가던 집들이 전문가들의 손을 거쳐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탈바꿈한다.
이미지 출처: MBC
‘다큐플렉스’는 현실과 맞닿아 있는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동시에 예술성도 놓치지 않는 야무진 구성이 빛나는 프로그램이다. ‘주거’를 소재로 한 이번 기획에서도 이러한 ‘다큐플렉스’만의 정체성이 잘 드러난다. 프로그램 속 빈집의 변신은 감동적인 행운 이벤트보다는 대중을 설득하기 위한 치밀한 주거 실험에 가깝다. 때문에 <빈집살래>는 아주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도심 속 빈집에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잘 살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준다. 의뢰인이 책정한 예산에서 벗어나지 않는 집을 매입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리모델링 공사비도 꼼꼼히 계산하며, 계약 도장을 찍는 장면도 여과 없이 공개하는 식이다. 예산 등의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낡은 집을 최대한 예쁘게 바꿔놓는 데에만 신경을 썼다면 지금의 <빈집 살래> 시리즈만큼 매력적인 다큐멘터리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거다. 빈집을 활용한 내 집 마련이 그저 듣기에만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충분히 도전해볼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메시지를 아주 논리적인 방식으로 증명하고자 하는 노력이 인상적이다.
이미지 출처: MBC
‘빈집’이특별한이유
‘집’은 다른 사람들의 가장 내밀한 공간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을 정확히 공략하는 좋은 소재다. 원래 남의 집 구경이 제일 재미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에 더해 코로나 19는 방송계가 ‘주거’를 소재로 한 아이템에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는 새로운 이유가 됐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촬영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에서, 비교적 안전한 집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미 요소로 눈길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최근에는 MBC 뿐만 아니라 다른 방송사에서도 ‘집’이라는 소재에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큰 집, 작은 집, 정돈된 집, 어질러진 집, 움직이는 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집을 소개하고, 집 안에 감춰져 있던 볼거리를 찾아내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중이다.
이렇게 많은 방송사들이 ‘집’을 소재로 한 콘텐츠를 쏟아내는 와중에, 많은 집 중 어찌 보면 가장 볼품없는 ‘빈집’에 주목한 MBC의 행보는 낯설어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오느른>이 오래도록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이란 어떤 곳인지를 보여주었다면, <빈집살래>는 나와 이웃들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도시 공간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두 프로그램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같은 소재를 택한 것은 단순히 우연의 일치일 수 있다. 의도치 않았다 하더라도, MBC의 연이은 ‘빈집’ 콘텐츠는 대중에게 올바른 주거에 대한 사유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도 유의미한 기획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담백한 영상미와 은은한 문체가 매력적인 <오느른>, 감각적인 디자인과 치밀한 구성이 빛나는 <빈집살래> 모두 많은 사람들이 두고두고 꺼내어 보는 명작으로 오래도록 사랑받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