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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곤쌤 Jun 30. 2024

처음 강의하던 날




처음은 학원 수업이었습니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스피치 강의를 열었지만 6개월 동안 수강생이 없었습니다. 이 말만 들으면 속상하고 슬플 것 같지만 오히려 다행스러웠습니다. 수업을 연다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숨이 안 쉬어지는데 막상 학생을 상대로 강의를 하는 게 무섭고 두렵기 때문이었죠.



유령처럼 존재하던 수업에 신청자가 한 명 생겼습니다. 1명. 고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1:1 수업을 하는 건 학생도 싫어할 거고 어색하고 시간도 못 채울 것 같아. 최소 인원이 안 돼서 폐강되었다고 해야겠다.'라는 마음과 함께 '아니야. 그래도 이렇게 피하기만 해서는 학생이 안 생길 것 같아. 차라리 잘 됐어. 처음 하는 수업이니까 많은 사람에게 하는 것보다 욕먹더라도 한 명한테만 욕먹으면 되지'라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욕먹을 생각으로 시작했던 처음 시작을 생각하면 굉장히 미안하지만 일단 나만 생각하자는 마음으로 한 명과의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나고,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고, 긴장하면 말이 빨라지는 버릇 때문에 예상했던 2시간 수업에서 30분 일찍 끝나버린 망한 수업이었습니다. 남은 30분을 어떻게 할까... 마지막 슬라이드를 설명하면서 그렇게 머리를 굴려본 적이 살면서 없을 정도니까요.



강의 중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터졌을 때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것 같으면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다는 선배 강사님들의 조언이 있었기에 상황을 솔직히 털어놓기로 했습니다. 



"제가 너무 열심히 달렸나 봅니다. 예상보다 강의가 일찍 끝났네요. 혹시 질문이 있을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자연스럽게 풀어갈 대응방법은 너무나도 많지만 당시에는 아무 생각도 못하는 초보강사였기에 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20살이었던 당시 학생이 저한테 묻는 질문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보통 저런 상황이라면 '질문 없어요'라거나 스피치 관련 질문을 하거나 다음 수업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그 학생의 질문은 달랐습니다. 

"쌤은 어쩌다가 강사가 되셨어요?"



그 순간, 무슨 말을 할까. 어떻게 시간을 채울까. 고민하던 머리와 홍수 났던 등의 땀이 멈췄습니다. 마치 교실이 카페가 된 것처럼 딱딱했던 모든 것들이 부드러워졌습니다. 정보나 내용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관심이 분위기를 풀어줬던 것 같습니다. 남은 30분 동안 우리는 살아온 삶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다음 수업이 기대가 되기 시작했죠. 



처음 강의하던 날, 저는 그 학생 덕분에 라포형성하는 방법을 배웠고 강의가 재밌다는 것 더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겠다는 열정이 심어졌습니다. 어쩌면 두렵고 떨렸던 강의의 첫인상을 좋게 심어준 덕분에 지금까지 강의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학생은 저의 결혼식에도 와주었고 지금은 선교를 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선교비를 후원하고 있죠. 어쩌면 제가 강의를 하는 이유가 '연결되고 싶어서'일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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