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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효신 Aug 21. 2021

Oh Boy(2012)

그런 날이 있다. 

날은 화창하고 바람도 선선한데 딱히 어디 갈 곳이 없을 때.

마땅히 만날 사람은 없는데 혼자 가긴 좀 그런 레스토랑의 음식이 너무 먹고 싶을 때.

그렇다고 배달 음식을 시키기엔 지루하고 그렇다고 요리를 하기도 귀찮을 때.


토요일 오후 딱 내 모습이었다.


날은 너무 좋아 안 나가면 서운할 것 같고, 배는 또 고프고 그래서 소파에 누워 배달앱을 켰는데 지겹고.

그래서 일단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섰다. 마땅히 갈 곳은 없었기에 집 밖을 나와서 이 방향 저 방향 엉거주춤하다 되는대로 걸었다. 너무 되는대로 걸었는지 울퉁불퉁 자갈 위를 걷기도 하고 전기 회사 입구에 들어갈 뻔도 했다. 우왕좌왕 걷다 도착한 곳은 종종 자주 오는 -작은 강가를 낀- 아이스크림 가게가 무려 3곳이 있는 신축 주택단지였다. 배가 너무 고파서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갔다. 한쪽 가게는 늘 사람이 와글바글하고 한쪽은 조용하다. 나는 북적이는 싫어하는 터라 조용한 가게에 들어가 와플을 시켜먹은 적이 있었다. 기대를 안 했는데 촉촉 보드랍고 달콤해 기뻤던 기억이 있다. 그 기쁜 기억을 안고 오랜만에 그 가게에 들어갔다. 나는 와플에 슈가파우더를 뿌린 기본 맛과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 한 스쿱을 시켰다. 점원은 아이스크림을 먼저 건네주고는 바깥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면 불러준다고 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예상보다 더 맛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바깥 테이블에 사람도 별로 없는데 그냥 여기서 먹고 갈껄 그랬나 하는 약간의 후회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아이스크림을 다 먹었다. 와플은 언제 나오는지 계속 기다렸다. 빈 컵을 테이블 위에 두고 멍하니 기다리는데 다른 손님의 그릇을 치우러 나온 점원이 나를 보고 흠칫한다. 아무래도 와플을 팬에 올려두고는 까먹은 듯했다. 재빨리 들어가 나에게 포장된 와플을 건네주었다. 길을 걸으며 한 입 먹으니 약간 딱딱하다. 조금 속상했다. 그래도 아까 먹었던 아이스크림이 맛있어서 그런지 서운한 마음을 다시 아이스크림으로 달래러 늘 와글바글한 건너편 가게에 갔다. 조용한 가게에 다시 가는 건 왠지 민망하니까. 

 무슨 맛을 먹을까 한참 고민하다 무려 두 가지 맛을 선택했다. 한 손에는 두 스쿱의 아이스크림이 한 손에는 포장된 와플을 들고 강가 근처 벤치로 갔다.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었는데 아... 맛이 없다. 한번 더 기대를 품고 다른 맛을 먹었는데 아... 이것도 맛이 없다. 에라 그냥 와플이나 먹자 하고 와플을 다시 한 입 베어 물었는데 그 새 좀 식었는지 더 딱딱해졌다. 턱이 아프다. 이 와중에 내 쪽으로 바람이 휭 불어 바지 위에 슈가 파우더가 우수수 다 떨어졌다. 입자가 고와 잘 털어지지도 않는다. 에라이. 그냥 다 됐고 글이라도 끄적여볼까 챙겨 온 노트와 펜을 꺼냈다. 이것저것 써 내려가다 이제 막 앉은 내 뒤편의 무리 중 한 여자가 정말 크게 웃는다. 웃음소리가 너무 커서 이어폰 사이사이로 비집고 들어온다. 10분 동안 웃음은 그치지 않고 기침도 섞이기 시작했다. 나는 물건을 주섬 주섬 챙기고 반대편 길을 걸었다. 벤치가 나오면 앉아서 마저 글을 쓸 생각으로. 걷다 강물 위의 백조 한 마리가 보인다. 물 안에서 무엇인가를 찾는지 목을 몇 번이나 강물에 넣는다. 찾는 게 없었는지 끽끽 거리며 소리를 내는데 꼭 짜증이 섞인 것만 같다. 마침 벤치에는 사람이 다 꽉꽉 차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나의 모습 속에서 인상 깊게 봤던 독일 영화가 흘렀다. 'oh boy'.

흑백 영화에 한 남자가 나온다. 이 남자가 일어나서 원했던 건 딱 커피 한 잔이었다. 하필 몇 센트가 모자랐고 은행카드는 정지되어 있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하루 속에 이 남성은 오늘 하루 유달리 많은 사람과 사건들을 지나친다. 하지만 때마다 저마다의 이유로 커피는 좌절되었다. 끝끝내 남성은 그날 커피를 마실 수 없었다. 딱 하나 원했던건 그저 커피 한잔이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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