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즐겨 읽던 만화를 꼽으라면 단연 슬램덩크와 드래곤볼을 이야기할 것이다. 나와 비슷한 시기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아마 열에 아홉은 같은 생각이리라 생각한다. 먼저 접한 것은 드래곤볼이었다. 초등학교 때 아이 손바닥 만한 해적판 만화책을 모아서 다락방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동네 형 집에 놀러갔을 때 접한 정식 단행본은 시원한 크기가 인상적이었다. 매일 아이 손바닥 만한, 서점에 파는 미니북보다 작은 크기로 보다가 국판 크기로 보니 다른 만화책을 보는 느낌마저 들었다.
당시 주간 만화잡지 아이큐 점프에도 연재되었다. 몇 페이지 되지 않았지만 별책부록 형태로 제공되던 드래곤볼을 정말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읽곤 했다. 주간 만화잡지라고 하면 부록도 빼놓을 수 없었다. 아이큐 점프가 먼저 나왔었고 후에 소년 챔프라는 잡지도 생겼다. 둘 중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 나지 않지만 플라스틱으로 된 드래곤볼을 주기도 했다. 7성구를 모두 모으지는 못했지만, 만화잡지로 받은 부록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시간이 흘러 중학교에 들어가고 그때는 나도 드래곤볼을 단행본으로 읽었다. 아마도 당시 유행하던 책 대여점에서 빌려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학교 이발소에 머리를 깎으러 가서 기다리는 시간에 드래곤볼을 읽기도 했다. 그렇게 열광하며 읽었는데, 손오공은 셀과의 대결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죽게 된다. 이때 상당히 안타깝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손오공은 죽어서까지 계속 등장했다. 지구를 구한 공을 인정 받아 죽어서도 몸을 유지했다. 그리고 가끔 지구로 오기도 하며, 마인 부우와 대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42권에 드래곤볼은 끝이 났다. 다행히 이후 접한 슬램덩크가 드래곤볼이 하던 역할을 대신하며 나는 또 새로운 만화책에 빠져들었다.
드래곤볼은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리즈를 만들어내며 세대를 초월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만화책 42권까지의 스토리 이후에 양산되는 시리즈들은 왠지 흥미가 가지 않는다. 내가 자란 탓도 있겠지만, 이후 나오는 시리즈가 왠지 B급 감성으로 보인다. 또 초사이어인 버전이 늘어갈 수록 이게 뭔가 싶은 생각도 든다.
이렇게 드래곤볼 이야기를 장황하게 꺼낸 이유는 드래곤볼에 나오는 ‘시간과 정신의 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기는 평생 이틀 밖에 들어가지 못하는데 바깥 세상에서 하루가 그 안에서는 1년이다. 결국 그곳 시간 기준으로 평생 2년을 지낼 수 있는 것이다. 그 시간이 지나가면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문이 사라져 그속에 갇히게 된다. 그곳은 중력도 매우 강하여 수련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2017년 독서에 한참 빠져드는 한편 왜 이제야 책을 본격적으로 읽게 되었을까 한탄한 적이 있다. 그러고 가끔 드래곤볼에 나오는 ‘시간과 정신의 방’이 실제 있다면 어떨까 생각한다. 그곳에 들어가서 바깥 세상의 하루 또는 이틀의 시간 동안 내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 좋겠다며….
물론 중력이 강해서는 안 된다. 내가 손오공처럼 몸을 단련할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런 곳에서는 잠시도 살지 못할 테니까. 그저 시간만 바깥보다 느리게 흐르길 바란다.
이런 상상을 하고 있노라면 나만의 가상 공간을 하나 설정하고 그에 대한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나에게 실질적인 어떤 것이 남는 활동을 아닐지 모르겠지만 흥미로운 작업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