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설가가 쓴 산문집을 좋아한다. 그런 책들은 읽는 맛이 있다. 김연수의 산문집은 마음에 와닿는 문장과 그 표현이 인상적이다. 또 김영하의 산문집은 특유의 위트와 유쾌한 상상이 즐겁다. 물론 생각보다 나에게 맞지 않는 소설가의 산문집도 있다. 어떤 작가의 산문집은 지금껏 3권 쯤 읽었는데 왠지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가 에세이에 관해 추구하는 방향이 나와는 맞지 않는 것이리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은 반반이다. 『나는 이렇게 여행기를 쓴다』는 괜찮게 읽었다. 나도 그렇게 걸어서 여행하며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반면 그 이전에 접한 하루키의 몇몇 산문집은 서너 챕터를 읽다가 이내 읽기를 중단했다. 내가 잘 모르는 시절의 노래나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느끼기도 했고, 왠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그건 전적으로 내 부족한 교양이나 취향의 차이 때문일 수 있다.
그런 산문집 중에 한 페이지, 한 문장 유독 아껴 읽었고 다른 책에 비해 다시 읽기도 여러 차례 했던 책은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이다. 처음에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는데 맨 앞에 나오는 ‘책 머리에’를 읽다가 ‘이 책은 사서 읽어야 할 책이다’고 생각하고 금방 반납하고 구입해서 읽었다. 『청춘의 문장들』에는 마음을 울리는 문장과 이야기가 가득했다.
또 이 책은 맥주를 한 잔 하며 읽을 때면 더할 나위 없음을 느낀다. 혼자 마시면 급히 마시게 되어 금방 취기가 오른다. 그런 나에게 술을 마시면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페이지는 술술 잘 넘어가지만 정작 머릿속에 남는 것은 없는 극히 비효율적인 책 읽기다.
다만 술을 마시며 읽으면 감수성이 더 예민해진다. 마음을 울리는 표현이 많은, 이 책에서 짧은 이야기, 한 가지 표현 등에 집중할 때는 술을 마시면서 읽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이런 점은 이 책을 이미 여러 번 읽었기에 그런 것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읽는 책은 되도록 맑은 정신에서 읽는 편이 낫다.
『청춘의 문장들』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봄을 기다릴 때, 내가 읽는 책들은 주로 시집들이다. 봄에 읽는 시의 원형이라는 게 있다면 바로 당시다. 시인들이란 모자란 것, 짧은 것, 작은 것들에 관심이 많은 자들이니 계절로는 덧없이 지나가는 봄과 가을을 지켜보는 눈이 남다르다.
가끔 내 하루도 참 덧없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어떤 의미도 찾지 못하는 것은 인생을 사는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대체로 아침 일찍 출근하여 내 물통과 연구실용 물통에 물을 떠 놓는다. 음수대 앞에서 물을 뜨면서 종종 습관처럼 ‘지겹다 지겨워’, ‘재미없네’와 같은 말을 중얼거린다.
‘오늘 하루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늘도 그저 똑같은 일상일까?’ 까지는 생각지도 않는다. 그저 반복되는 재미없는 일상을 지루하게 느낄 뿐이다. 그런 일상이라도 시간이 지나서 떠올려보면 무언가 남는 것이 있을까? 어떤 감정의 흔적만이라고 남을까?
덧없는 하루다.
글쓰기는 그런 덧없는 하루에 대해, 아주 조그만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며, 감정의 흔적이나마 남겨보는 일이다. 그런 덧없는 하루를 붙잡아 보려는 하나의 몸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