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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등 Apr 18. 2024

열어두는 연습


마땅한 자물쇠가 없었다. 자전거 체인이라도 찾아 기어이 대문을 꿰매고 나서던 날, 제 집 놔두고 담 넘어 살덩이 키우는 호박까지 가두지 못한 것이 못내 서운하였으나 정작 잃어버린 것은 자전거 체인 열쇠였다. 이래서 지문인식 칩이 필요하다. 심장에도 지문인식이 필요하다.
-제대로 채우지 못하니 심장이 열리지요- 

의사가 말했다. 

-가슴 윗길로는 시처럼 꿰매지 말아 주세요. 아귀가 맞지 않아 넌더리가 난다니까요.- 

내 눈꼬리가 채 닫히지 못한 대문처럼 치켜졌다. 동안에 나는 어디에 서 있어야 하나. 

의사는 심장이 멎어 있는 동안은 꿈도 꾸지 않는다고 했다.

도둑고양이 집 목구멍으로 날름 뛰어든다. 나는 시들시들 웃는다. 비린 것이 있을 리 없지. 그리운 것들은 늘 비린내만 풍겼고 빈방에 덜렁 누운 심장은 헛구역질을 했다. 담으로 까치독사가 꼬리를 걸쳤다. 아무래도 길 없이 다니는 것들에 대해 엄한 단속이 필요하다. 덜컹덜컹 대문을 흔들어보지만 발목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나 하나뿐. 아무도 긴장하지 않는다. 딱 맞는 열쇠 하나 갖고 싶다. 어두운 곳으로 기를 쓰고 들어가는, 이유를 알고 있는 열쇠. 

의사가 말했다.
- 천천히 순서대로 열어두는 연습이 필요해요 - 

마침내 갇힌 것들이 환해질 때까지. 시라도 하나 자물쇠에 넣고 끄적거려 볼 일이다. 자전거 체인이 걸쳐 있던 대문으로 바람이 제 집처럼 들어간다. 우두커니 서 있는 내 심장에도 바람이 분다. 이제 헛구역질은 멈춰질 수 있을까.
꿈을 꾸지 않은 하루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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