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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등 Apr 15. 2024

신자




이야기는 뻔해서

석수동 기찻길 다리 아래 개천엔 이무기가 살았다.

한 여름 그 곳에서 다이빙하던 아이가 사라지면

이무기가 먹었거니 했다.

(적어도 난 열 한살까지는 그렇게 믿었다.)

신자가 포플린 월남치마를 걷어 올리고

하루 종일 다리 사이를 씻었던 곳도 그 다리 밑이다

며느리밥풀도 달맞이꽃도 참 수다스럽던 곳

기차가 꼬리를 말고 다리 위를 지나칠 때면 신자는

검은 침목사이로 징그럽고도 기다란 기차의 배를 올려다보았다

기차바퀴가 쇳소리를 낼 때마다 신자는

무슨 생각으로 머리를 붉게 쳐들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이들은 돌을 던지며 신자에게 진격했고

신자는 검은 소용돌이 속으로 숨었다

원래 뻔한 이야기는 보태지고 부풀려지는 법

신자는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다리는 가늘어져 가고

삐져나온 젖꼭지는 마른 바람에 통통하게 불었다

신자가 부풀수록

우리는 신자를 숭배하였다

신자는 포플린 깃발을 휘날리는 검은 알이 되었다

그믐밤

신자가 다리위로 올라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칸나를 쥐고 흔들었다고 하는데

낮이면 월남치마 밑에 숨긴 칸나의 불꽃이 언뜻 보이기도 했다

가뭄이 오래되어 개천이 마르면

신자는 몸속에 가두었던 물을 풀어

빨래터 샘물만큼은 마르지 않게 했다

심지어 아이들이 던진 돌들은

신자의 몸에 닿자마자 물방울이 되어 사라지고

돌을 던진 아이 손등엔 사마귀가 생겨났다

저녁 무렵 산발한 빗줄기가 처마 끝에 목이 잘리던 날

무성한 슬픔이 개천을 넘어 둑을 넘어서던 날

이무기를 찾아갔던 신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즈음이었다.

잔뜩 돌멩이에 짓이겨진 칸나를 발견 한 것도

두 마리의 이무기가 엉켜서

밤새 몸부림쳤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송장메뚜기가 마을을 쓸고 지나간 것도

순분이 오빠가 갑자기 다리를 절뚝이게 된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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