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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등 Apr 09. 2024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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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을 밟고 문고리를 잡고

이 방을 확 뒤집으면

벽지는 세상을 두르는 벽이 되고 문고리는 세상 쪽에서 잠기는 것 맞죠?

삼십도 열대야에서

냉장고를 뒤집어 버렸다는 신문기사를 보았어요.

말하자면

나는 세상이고

세상은 갇힌 거죠.


바뀐 세상은 중심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요?

수 만 갈래 길 끝에서 만나는 건 무늬 없는 벽

끝내 문고리를 찾지 못하고

세상은 은둔이 시작되겠죠.

나는 세상을 구원하지 않겠어요.


뒤집힌 내 방은 자유를 얻어요.

세상 밖의 세상으로 자유

누렇게 뜬 책들이 훌훌 자기 무게를 털고

그냥 너풀거리며 살고 싶다고 너스레 떨어요

아무래도 자유는 싱겁기 그지없어요.


긴꼬리제비나비 

더듬이로 밀도를 재고 발끝을 내밀어 맛을 보아요.

보통의 시간들이 뭉글뭉글

나비의 걸음으로 천천히 벽지 위를 걸어요

나비 아장아장 날아올라요


세상은

은둔자가 되어도 여전히 시끄러워요

벽을 긁는 소리 탕탕 망치소리


알게 뭐에요

문고리는 세상 쪽으로 갔다는 거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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