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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등 Jun 28. 2024

secret 어린 왕자 7

가시에 중독되다.

K


어제는

책을 읽다 책에 코를 박고 잠이 들었어.

마침 어린 왕자가 아저씨에게 바락바락 대드는 장면까지 읽다가 말이야.

왕자의 주장은

꽃은 수백만 년 전부터 가시를 만들어 왔다는 거야

양은 가시 있는 꽃은 먹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양은 가시 있는 꽃을 먹었대.

수백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말이야.

그래도 가시를 만드는 일은 꽃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라는 거야.


어린 왕자의 격분한 표정 앞에서 절절매고 있을 아저씨를 생각하니 

아저씨가 조금 가엾기까지 했어. 


K


난 선인장을 참 좋아해. 

당차고 앙증맞은 가시가  선인장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지

사실 가시가 다 가시는 아니야.

어린 왕자가 말한  장미의 가시는 어쩐지 화장품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아?

나는 그런 비릿한 이중성을 싫어해.

빨간 입술에 이슬을 품고

파리하고 작은 가시를 잎 새 뒤에 보일까 말까 숨기고,

"내 매력은 이 가시거든?"라고 말하는 것 같아.

사실 장미의 가시는 줄기 껍질의 변형이야.

먹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주목할 만한 무기는 될 수 없지.

가시의 목적이 먹히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면

수백만 년간 장미는 쓸데없는 노력을 했어.


무식한 가시도 있어.

캐멀손의 가시는 약 9㎝나 되는데

그런 가시를 앞에 두고 아무리 굶주렸다고 해도 혀와 입을 찔리는 것을

개의치 않는 짐승은 별로 없을 거야.  

물론 가시를 사랑할 짐승도 없다는 것은 뻔한 추론이지.

산사나무 가시도 그래.

몸 자체인 나뭇가지를 변형시켜 가시를 만들거든.

진정한 무기는 드러내야 해.

그래야 확실하게 먹히지 않아. 안 그래?


그러나, 내 마음을 빼앗은 건

장미의 가시도 아니고 캐멀손의 가시도 아닌 선인장의 가시야.

선인장의 가시는 찰랑이던 잎의 변형이거든.

가시는 차갑게 빛나는

흔들리지 않는 언어야.

가시는 의지이며

자신을 변화시키는 응원의 메시지야.

꾸밈도 치레도 없는 

포기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혜라고 생각해.


K


이왕 가시를 만들려거든

장미 가시보다는 선인장의 가시를 추천할게.

파란 잎들에 관한 추억을 과감히 정리하고

보이지 않는 뿌리를 내리는 일에 몰입하는 선인장 말이야.

뿌리를 내리는 일이야말로 사막과 같은 삶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지키는 일이지.


젊은 K


아저씨는 아직 어린 왕자에게 이 말을 숨기고 있는 듯해.

어느 날인가 조용히 어린 왕자에게 편지를 쓰겠지.

만약에 성공하고 싶다면

먼저 버릴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다음에 갖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알았다면

수백만 년이 걸린다고 하더라도

너만의 가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너만의  사랑스러운 무기가 있어야 한다고.


내 생각도 아저씨의 생각과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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