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세 번째 별에는 술주정뱅이가 있었대.
술주정뱅이는
부끄러워서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니 다시 부끄러워진다는 거야.
그래서 다시 술을 마시고, 다시 부끄러워지고...
어린 왕자가 이상하게 생각할 만 해.
아저씨와 어린 왕자는 뒤에서 남 흉보는 사람이 아니라서 별 다른 이야기는 없었지만,
딱 봐도 아는 일 아니야?
세 번째 별에 술병 말고 또 무엇이 있겠어.
도대체 술 사는 돈은 어디서 났을까. 난 그것이 궁금해.
사실 순환논리는 보아뱀이 변신한 거야.
영리한 보아뱀이 코끼리를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논리일 뿐이지.
"그래서 술주정뱅이는 여전히 술을 마신대?"
내가 물었어.
"그럴 거야. 여전히 부끄러울 테니까."
아저씨는 덤덤하게 대꾸했지.
"바보군. 다시 부끄러워지면 술을 마시는 대신 이미 마신 술병을 세라고 전해 줘.
숫자를 셀 땐 부끄럽지 않으니까."
아저씨는 내 말을 듣고 웃지 않았어. 사실 숫자세기는 나의 코끼리 한걸음이었어.
"너도 부끄러워서 숫자를 센 적이 있니?"
아저씨가 물었어.
나는 슬쩍 돌아서서 고개를 끄덕였지.
아저씨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어.
"숫자를 세는 밤들은 얼마나 힘들었던 거니."
예전에도 아저씨는 이 말을 한 적이 있어. 어린 왕자에게도 나에게도.
-마흔세 번이나 노을을 본 날은 얼마나 슬펐던 거니.-라고
아저씨는 술주정뱅이도 슬프고 힘든 일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거야.
술주정뱅이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언제까지 보아뱀 속에 있을 수 없어. 그건 죽음을 뜻하는 거니까.
K,
세 그루의 바오바브나무 기억나지?
바오바브나무 싹을 뽑지 않고 게으름을 피운다면
무서운 결과가 기다리지. 바오바브나무뿌리 때문에 별이 파괴되거든
어린 왕자는 날마다 바오바브나무 싹을 뽑았어.
나의 코끼리 한걸음이 숫자세기라면
어린 왕자가 보아뱀 속에서 나가기 위한 코끼리 한걸음은
바오바브나무가 크기 전에 날마다 싹을 뽑는 거야.
사람마다 코끼리 한걸음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라.
부끄럽거나 슬프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코끼리 한걸음을 기억해.
부끄럽다고 뱀의 꼬리에서 나와 다시 뱀의 입으로 들어가서는 절대 안 돼!
도움이 필요하면 외쳐야 해.
"도와줘!"
초원으로 가는 코끼리들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크게
함께 코에 코를 잡고 초원으로 가자. 코끼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