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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곡리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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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등 Oct 19. 2024

<소설> 곡리 3


대문 앞에서 노인들은 한숨을 돌렸다. 급경사는 아니지만 오르는 길이었고 대숲집은 동네 마지막 집에서 몇 걸음 더 올라야 했다. 마을 집들은 골짜기 아래쪽을 향해 있었다. 그러니까 모두 남향집인데 반해, 대숲집은 동향이었다. 마을 가장 위쪽 산비탈을 깎아 터를 만들어서인지 시야가 탁 트여 느낌이 좋았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주황색 기와지붕 넘어 대숲이었다. 울창한 대숲에서 이는 바람은 울타리를 넘지 않고 오롯이 집안에서 맴도는 느낌을 주었다. 대문 앞에 이르렀을 때, 잠깐 동안이지만 몇 가닥 댓잎이 소란스럽게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바람이 일으킨 소동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댓잎의 파삭 거림이 마치 공장의 기계음처럼 날카롭게 심장을 파고들었다

공장은 늘 긴장감이 감돌았다. 각각의 기계들은 규칙적인 자기만의 소리가 있다. 황반장은 가끔 기계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곤 하였는데 기계와 대화중이라고 했다. 모두 웃었지만 놀랍게도 황반장과 기계의 대화가 끝나면 문제의 대부분은 해결되었다. 물론 나는 황반장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 것은 아니지만 기계를 대하는 그의 태도만큼은 존경하였다. 그날 아침, 황반장이 금속 절단기를 쓰다듬으며 “이제 정지해야 하는 걸 이놈도 아는 것 같다.”라고 쓸쓸하게 말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낯선 기계음을 들었다. 불안과 맞닿아 있는 파동이 날카롭게 심장을 스쳤던 것이다. 오후에 퐁샤는 손가락이 잘렸고, 기계는 멈추었다. 언뜻 댓잎의 흔들림에서 그날의 기계음을 들었다. 그것은 울음보다 나직했다. 


모자 쓴 노인은 대문에 걸려 있던 달팽이 모양으로 구부려 만든 굵은 철사를 돌렸다. 쇠로 된 낮은 대문이 아무런 저항 없이 활짝 열렸다. 노인 둘은 자기 집인 듯 자연스럽게 대문 옆에 자란 잡초부터 뽑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할매가 칠월께 죽었응께, 집은 아적 깨끗타.”

모자 쓴 노인이 허리를 펴며 말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짜를 물어보니 내가 남쪽으로 내려온 날과 얼추 비슷했다. 억수로 비가 내리던 밤이었다고 했다. 동네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자던 방에서 돌아가셨으니 복이 있는 죽음이라고 했다. “할매가 원래 복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구마.” 모자 안 쓴 노인이 덧붙였다. 복이 있는 죽음이라는 말이 다소 희극적으로 들렸다.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 먹고 자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과 어느 집이든 죽음은 있었다는 평소 생각 때문에 복이 있건 없건 할머니의 죽음은 내게 별다른 의미를 주지 않았다.

대문 오른편으로 작은 텃밭이 있었고 그 앞으로 단정한 집 한 채가 있었는데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는 툇마루가 있었다. 진짜 나무로 만든 꽤나 넓고 긴 툇마루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툇마루에 앉아 보았다. 대나무 울타리 너머 맞은편 산언덕이 보였다. 드문드문 억새가 하얗게 꽃을 피워 눈부셨다. 언뜻언뜻 헛것이 보였지만 그것은 가을빛이 만든 환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곡리 마을은 작은 산이 양팔로 안고 있는 형태였다. 대숲집은 산의 오른팔에 있고, 마주 보이는 언덕이 산의 왼팔인 것이다. 골목을 따라 양 옆으로 있던 마을은 조리처럼 쑥 들어간 곳에 모여 있어서, 대숲집에 들어서면 마을이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그때 마을 깊숙이 들어오는 경운기가 보였다. 경운기는 대숲집 아래에 있는, 마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파란 지붕집 마당으로 들어갔다. 경운기 소리가 멈추자 모자 쓴 노인이 대문 밖으로 나가 “이장! 이장!” 하며 소리쳤다. 잠시 뒤 모자 쓴 노인은 이장을 앞세우고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저것들은 와 아직 안 떠났는지 모르겠네. 평년 같으면 벌써 떠났을 긴데.”

이장은 흔들리는 대나무를 올려보며 못마땅한 듯 투덜거렸다.

“새댁이 신문 보고 왔다 안 하나.”

모자 안 쓴 노인이 등짐을 지고 이장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며 이장의 나이를 가늠해 보았다. 오십과 육십 사이? 목소리는 비교적 젊은데 이마의 주름이 깊었다.

“아, 집 보러 왔어요?”

사투리 반, 서울말 반이 섞인 어투였다. 이장은 목에 두른 수건으로 귀 옆으로 흐르는 땀을 닦았다. 왼쪽을 닦은 뒤 오른쪽을 닦았고 다시 왼쪽을 닦으면서 말했다. 말하면서도 땀이 계속 나는지 같은 행동을 반복적으로 했다. 귀까지 후벼서 닦았다.

“마침 지나는 길이라서……”

얼토당토않은 거짓말을 했다. 내가 생각했던 <시골 빈집>이 아니었으므로 대충 얼버무리고 돌아가려는 생각이었다. 이 정도의 집이면 어느 정도의 가격인지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찾던 집은 움막이나 폐가정도였다. 마당에 들꽃이 있으면 좋고, 굼벵이처럼 누울 수 있거나 마음 놓고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면 아무래도 좋았다.

“찬찬이 둘러보소. 할매가 알뜰하니 잘 가꾸어서 집은 좋아요. 대숲과 대숲으로 올라가는 언덕, 우 아래 텃밭이 모두 여그 땅이요.”

대숲을 빼고라도 족히 이백 평이 넘는 터였다. 이장은 툇마루로 성큼 올라서 동그란 문고리가 있는 방문을 벌컥 열었다.  

“여가 원래 할머니 방이요.” 

방으로 먼저 들어선 이장이 벽을 괜스레 두드리며 말했다.  

“황톳집이라.”  

툇마루에 걸터앉은 노인이 이장을 거들었다. 

나는 머뭇거리며 툇마루에 올라서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은 작았지만 천장의 깔끔한 서까래부터 대숲을 향해 열리는 작은 쪽창까지 동화에서 봄직한 버섯집 같았다. 옆에 작은 방이 붙어있었는데 아궁이에 불을 때서인지 새까맣게 장판이 탄 채로 있었다. 고급진 한옥은 아니었으나 작고 소담한 분위기가 누으면 금방 잠이 들 것 같은 방이었다. 방 안에는 작은 종이 박스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는 의아해서 이장과 종이박스를 번갈아 보았다.  

“할매가 유품으로 남긴 거라요. 아들에게 보내라 했는데, 아들도 필요 없다하고... 새댁도 필요 없으면 노인정으로 치울 거라요.”  

이장이 박스를 열며 말했다. 박스 안에는 까만 양장본으로 된 책이 대여섯 권 있었다. 무척 오래된 책이었으나 어찌나 잘 간수했는지 먼지 한 톨 묻어있지 않았다. 더구나 시골 할머니가 책을 유품으로 남기다니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영식이 책이라. 아들이 두고 간 책을 할매가 밤낮 읽지 않았나. 고마 돈 아깝구로 책을 뭐하러 미국에 보낸다말이고. 태우면 되구마.”  

“아이라요. 할매가 원래 글도 쓰고 책도 읽고 그랬으요. 아무튼 유언이니 유품에 대해선 암말도 하지 마소.”  

이장이 쐐기를 박자 두 노인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유품이라 하여 나는 책을 만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책들이 어느 출판사에서 어느 시기에 나온 것인지는 대충 알 수 있었다. 궁금한 것은 저 책들을 유품으로 남기려고 한 할머니의 생각이었다. 책갈피에 무슨 사연을 숨겨두었는지 모른다. 또는 책에 어떤 비빌 구조가 있어서 혹시 채권이나 통장 같은 것이 숨겨져 있다면…… 하고 생각하니 괜히 한발 물러서게 되었다. 나는 또 뜬금없이 먼 훗날 딸에게 이 책과 함께 나의 책을 비밀스럽게 유품으로 남기는 것을 잠깐 상상했다. 내 생의 마지막에 나는 딸에게 다시 이 책을 유품을 건넨다. 딸은 툇마루에 앉아 할머니의 유품이었을 책을, 그리고 이어서 나의 유품이었을 책을 밤새 읽는다. 그리고 "엄마가 나의 엄마여서 좋았어요."라며 흐느낀다. 내 생의 마지막을 평화로운 죽음으로 마무리하는 상상은 어찌나 감미로운지 전신으로 감겨왔다. 그러나 상상은 현실의 무게로 곧 내려앉았다. 나는 이 집을 살만한 돈이 없다. 한때는 돈이 없다는 것이 큰 위로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돈이 없다는 사실이 불안을 끌고 다녔다.


“저 것들은 여즉 가지 않고……”

이장이 투덜거리며 툇마루로 나섰다. 이장을 따라 툇마루로 나선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멀리 하얀 새떼들이 저무는 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공기를 타고 흘러오는 듯했다. 이장은 여전히 투덜거리며 말을 이었다.

“원래 이맘때는 떠나 있어야 하는디, 이번엔 뭔가 이상혀. 백로도 그렇고, 날씨도 그렇고.”

그의 말은 무심하게 흘러갔지만, 나는 백로들의 날아드는 모습을 보고 숨을 멈춘 채 있었다. 저 멀리서부터 점처럼 다가오던 새들이 집 가까이 와서는 대숲을 파고들며 그야말로 하늘을 덮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들은 가벼운 몸짓으로 대나무 숲에 사뿐히 내려앉았고, 대숲의 울림은 어느새 차분해졌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얽혀 있던 실타래처럼 나의 생각들이 하나씩 풀렸다. 퐁샤의 손가락, 황반장의 얼굴, 그리고 그날 아침 공장의 기계음까지—모든 것이 이 대숲의 흔들림과 맞물려 있는 듯했다. 백로들의 하얀 날개가 공중을 휘젓고, 그들은 마치 내 과거의 조각들을 고요히 덮어주려는 듯했다. 내 안에서 묵혀져 있던 불안과 두려움이 이 백로들과 함께 대숲 위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이곳이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대숲집은 나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었다. 


“미국에 사는 아덜이 이천만 원을 받으라 했으요.”

이장은 사투리를 툭 뱉으며 수건으로 귀 뒤며, 목 뒤를 연신 닦았다.  순간, 백로 떼의 장관도, 대숲집의 아름다움도, 할머니의 유품도 내 상상 속에서 빠르게 물러났다. 이천만 원의 반의 반도 없다. 대숲을 바라봤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가지 끝마다 방금 날아든 백로들이 흰 깃발처럼 오뚝하니 펄럭였다. 백로들은 마치 나를 주인으로 맞이하려는 듯 일제히 날개를 접었다. 하지만 그들의 환영이 현실을 바꿔줄 리는 없었다. 멀리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사십만을 떠올렸다. 나의 충실한 사십만. 지금은 사십만에게로 달려가는 것이 현실이다.

"집은 마음에 들지만, 돈이 부족해요. 번거롭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돌아서는데 대숲 백로들이 일제히 날개를 펴서 퍼득이며 소란스럽게 떠들어 댔다. 이장과 두 노인은 말이 없었다. 막 대문을 나서려 할 때 모자 안 쓴 노인이 소리쳤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성이 다른 박씨 노인이었다.

"보소! 샥시! 돈 안 내도 되구마!"

성난 듯한 박씨 노인의 외침에 나만 놀란 것은 아니다. 이장도 모자 쓴 총무도 함께 화들짝 놀라는 것 같았다.



곡리 대숲집에서 앞 언덕을 바라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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