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엘에게 01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등 Jan 27. 2024

다만, 못다 한 이야기가 있어서

이상하지요


어릴 때 나는 눈물이 많았습니다.

단발머리에 까만 실 핀을 꽂고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사진이 있었습니다만,

(사진은 어디로 갔을까. 단발머리.)

내 기억 속에 어른들은 사탕이나 건빵을 건네주면서

눈이 예쁘구나. 울었니? 라며 말을 건네곤 했습니다.

나는 늘 도리질을 했습니다.

도리질을 하면서도 눈물을 뚝뚝 흘리곤 했는데

그러면 어른들은

여자가 눈물이 많으면 팔자가 세단다.

혀를 끌끌 차면서도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기 때문에

나는 그 말이 좋았습니다. 손길이 따뜻했습니다.


마을에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가 있었어요.

나는 아카시아 나무와 엄마 놀이를 했습니다.

팔자가 뭐야?

엄마도 엄마가 있었어?

엄마의 뭉실뭉실했던 하얀 꽃은 또 얼마나 예쁘던지

그것은 건빵 속에 들은 작고 하얀 별사탕 보다 훨씬 좋은 것이었습니다.

또 나에겐 동생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송충이들이었습니다. (요즘 아이들 송충이를 모르더군요.)

송충이들을 한 줄로 세워놓고

줄이 비뚤어지면 작은 나뭇가지로 탁탁 바닥을 두드리며 야단을 치기도 했는데

제법 말을 잘 들었습니다.


꼭 기억이 좋았던 것만은 아닙니다.

어느 날인가 한 입 가득 꽃을 물었을 때,

그만 송충이를 같이 씹고 말았습니다.

퉤 하고 뱉었을 땐 늦었습니다.

짓이겨진 꽃잎과 씹힌 송충이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것도, 맛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에게 송충이를 씹게 한 엄마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었을까요

눈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왜 아카시아 나무가 미웠던 건가요.

한동안 나무 밑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차마 혼자 또 이별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 날,

자석처럼 아카시아 엄마에게로 가서 하얀 눈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입혀 준 눈 위로

엄마라고 또박또박 글도 새겨 주었으며,

엄마가 엄마의 이름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아카시아 엄마는

왜 별사탕 뒤에 송충이를 숨겨두었는지에 대해 해명은 없었습니다.

나는 화해도 없이 물어볼 생각도 못 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저 엄마라고 부르며

다시 나무 밑에서 놀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송충이와는 놀지 않았습니다. 송충이는 싫어졌습니다.


그 무렵 아이들이 가끔, 아주 가끔, 나에게 돌을 던지고 도망갔습니다.

나는 도망가는 아이들 뒷모습을 오랫동안 보았습니다.

가다가 돌아서 메롱 메롱 넌 엄마 없지? 놀리는 소리가

참 정다웠습니다.

손이라도 흔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지는 해도 아름다웠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아카시아 나무가 나의 첫 번째 어머니였습니다.

그 어머니를 떠나오게 된 것은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 대해 잠시 생각하시는 동안 나는 또 이별을 만나게 되었다고

초등학교 일기장에 그리 써 두었던 생각이 납니다.


그 후,


나는 아무도 놀리지 않았고,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았으며

아무에게도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자라면서 눈물도 없어졌습니다.

다만 못다 한 이야기가 있어서

뉘엿뉘엿 지는 해의 무게가 무겁기만 합니다.


압니다.

당신이 얼마나 나를 기다렸는지,

저 어린 새의 떠는 심장을 바라보듯 나를 바라보며

강물에 흰 꽃잎이 흐를 때마다 막막한 흐름에 대해 손꼽아보았을지

당신, 팔뚝의 그 파란 힘이 맥없이 떨리고

몇 번을 계단에 앉아 몇 개의 기차를 바라보았을지 압니다.


하지만 나는

기대고 서 있을 나무를 잃어버린 작은 짐승인 채로

당신을 찾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황혼의 내가

이제 화해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요?

수수한 잎들로 사랑과 詩를 노래할 수 있을까요?


행간을 비우고

오랜 시간의 타래를 풀어 당신에게 편지를 쓸 수 있게 될까요?


아직 이곳에 눈은 오지 않고 있습니다만.

당신의 이름 앞에 그립다는 말을 넣을 수 있게 될까요.


앞으로 나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