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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Jan 15. 2024

음악의 씨간장을 품고 사는 삶

늘 음악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자.

하이호이호이호~~ 사랑하는 윰!


갑자기 생소한 단어 씨간장이라니? 대대손손 가업을 이어 음식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인터뷰하는 것을 보면 씨간장이 있어서 맛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지? 씨간장은 햇간장을 담글 때 넣는 묵은 간장이야. 간장은 발효식품이니까 발효시키는 기간, 환경에 따라서 맛이 달라져. 만드는 과정에서도 재료들을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겠지만 같은 재료를 사용해서 담은 간장이라도 후발효의 시간을 거치면서 그 맛과 향이 아주 많이 달라지지.


새 간장을 담을 때 씨간장을 섞으면 씨간장이 말 그대로 씨가 되어서 그 새 간장의 맛에 중심을 잡아준다. 그래서 씨간장을 아주 귀하게 보관하고 행랑장을 담더라도 그중에 일부를 씨간장으로 만들기 위해 따로 보관해서 씨간장의 맛을 이어가지. 일본에서는 500년을 대대손손 이어오는 씨간장이 있다고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우리는 어떤 씨간장을 공유하고 있을까?


엄마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할아버지가 아주 애정하는 전축이 있었어. 이런 모양으로 생겼던 것 같아. 인터넷을 뒤져서 최대한 비슷한 사진으로 골라보았어. 지금 이 사진에는 턴테이블이 안 보이는데 제일 윗단에는 턴테이블이 있었어. LP를 들을 수 있는 그런 장치 알지? 너도 올해 생일에 턴테이블을 선물 받았잖아. 이 사진보다는 훨씬 더 고급스러웠던 기억이 있어. 어쨌든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가  LP를 늘 사 오셔서 음악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졌었어. 베토벤, 모차르트, 조용필, 정훈희, 엘비스프레슬리, 캐럴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할아버지가 맘에 드시는 걸 골라 오셨던 것 같다.  

인켈전축사진(네이버)

볼륨을 한껏 높이면 온 집안이 쿵쿵 울리는 듯했고, 베토벤의 운명을 들을 때는 꼭 볼륨을 높여서 들어야 한다고 하셔서 너무 최대로 높였다가 귀가 멍해지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었지. 그리고 가끔 음악을 틀어놓고 할아버지 발 위에 올라서서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기도 했었는데 그때는 왈츠가 흘러나오지 않았을까? 그때부터 엄마의 삶 속에 음악이 깊이 들어왔던 것 같아.


국민학교 때 생일 선물로 가곡집을 사달라고 말씀드려서 대한민국 가곡전집 LP 4장이 들어있는 엄청나게 두꺼운 가곡집을 선물 받아서는 곡 정보를 보면서 LP판에 조심히 얹어서 듣고 또 듣고 또 들었었지.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가곡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비목이야. 그 어린 나이에 그 가곡의 의미도 몰랐을 텐데 그렇게 혼자 그 음악이 뭐가 그리 좋았었는지 부르고 또 부르고 그랬었지... 나중 나중에 강원도 화천에서 첫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 비목이라는 가곡의 아픈 뜻을 알게 되었지.

엄마가 그 전축과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였을까? 할아버지는 방 세 개 큰 아파트에서 좁디좁은 단칸방로 이사 다니는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축을 버리지 않으셨어. 옷가지며, 장롱이며, 큰 물건들은 다 버리고 정리했어야 했지만 엄마의 책상과 전축은 끝까지 가지고 다니셨어. 물론 한때는 전축이 다락방 깊숙이 보관되어 있어서 음악을 들을 수 없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것이 여전히 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고, 단칸방에서 2칸 방으로 옮기고 나서는 전축이 설치되어서 마음껏 음악을 들으면서 지낼 수 있었어.


물론 비싼 LP를 살 형편이 안되어서 그동안 할아버지가 사 두셨던 치직 소리가 나는 LP를 듣거나, 친구들이 산 LP나 테이프를 빌려서 공테이프에 녹음을 하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녹음해서 듣기도 했지만 그 전축이 없었다면 마음이 얼마나 더 공허했을까 생각하면 아마도 점점 기울어가는 형편이었지만 그 전축과 책상만을 절대 버릴 수 없었던 할아버지의 마음속에는 씨간장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거라 생각해. 할아버지는 음악을 들을 마음의 공간이 없어지셨지만 엄마는 그 전축으로 내 감정을 표현하며 불같이 화가 날 때는 퀸의 음악을 온 동네가 떠나가라 틀어대고, 슬픔이 밀려올 때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을 들으면서 정처 없이 떠도는 마음을 붙들어 매었었지.


LP에서 CD, MP3, 아이튠, 멜론, 유튜브뮤직으로 옮겨오는 동안 한순간도 음악과 멀어져 본 적은 없었지만 점점 무디어져 가고 감정이 메말라가는 나를 발견할 때는 나무에 수액을 주듯이 콘서트나 음악회를 가서 감정에너지를 충족시키곤 했었어. 일상 속에서 음악을 항상 접하고 그 시간을 통해 마음을 정화하면서 사는 게 훨씬 좋은데 별 보기 운동하면 출퇴근을 반복하고 음악 듣고 있을 환경이 안되다 보니 그런 일상성을 계속 유지하면서 사는 게 어려워졌어. 그래도 자각을 하는 순간이 오면 어김없이 각종 문화행사들을 찾아다니면서 정화의 시간을 가지려고 무지 애썼던 것 같아. 아마도 그 애쓰며 지켜온 정화의 시간이 없었으면 훨씬 더 많이 마음을 다치며 살지 않았을까?


엄마가 할아버지에게 귀한 선물을 받았듯이 너에게 음악의 씨간장을 물려주고 싶었어. 너는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K팝의 수혜를 입어서 팝송이나 클래식보다는 한국의 대중음악 그중에서도 아이돌 음악을 주로 들으면서 자라났지. 유치원 때부터 원더걸스 음악에 맞추어 발표회 준비를 했으니 음악에 대한 감각이 대중음악 위주로 발달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


가끔 집에서 클래식을 틀어두어도 피아노 학원에서 모차르트를 배워도 집에서는 늘 대중음악만을 듣고 있는 너에게 더 넓은 음악의 세계를 알게 해 주고 싶었어. 우리가 음악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들을 수 있는 귀와 마음을 선물하고, 음악을 통해 감정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 주고 싶었어.


네가 대학 입학할 당시는 코로나 시즌이었어. 우울해하는 너에게 드럼 배우기를 권유했었지. 엄마가 한참 배우다가 코로나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아지면서 그만두었던 건데 그걸 배우는 동안 정말 너무 행복했었거든 그 행복한 순간을 너에게도 공유하고 싶어서 권했는데 다행히도 시작을 해 주었지. 피아노도 배우다 그만두었던 적이 있어서 끝까지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결국 어려운 과정을 다 거치고 재미도 알게 되어서 대학밴드부에서 드러머로 활동하고, 축제 무대에 서기도 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몰라.

 

네가 드럼을 배우길 정말 잘했다고 말할 때 참 뿌듯했어. 물론 배우는 동안 힘든 순간을 다 뛰어넘은 건 너였지만 나에게는 살아가는 동안 너에게 엄청난 양분이 될 좋은 길로 인도해 주었다는 뿌듯함이 남았지. 엄마도 아직 마음에 공간이 남아있기는 해. 다시 시작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 네가 너무 잘하니까 샘이 날 때도 있거든*^^* 나도 멋지게 곡을 연주해 보고 싶었는데 너무 초급단계에서 그만둔 것이 아쉬움이 남아서 꼭 다시 시작해 볼 거야. 기다려~~~


드럼을 배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의 씨간장을 공유하게 되었어.


요즘 너와 함께 자우림의 노래를 목청 높여 같이 부를 때 생물학적인 엄마와 딸을 넘어서 공감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함께하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걸 느끼거든. 살아가는 동안 내 감정을 다스릴 무기를 단 하나만 가지라고 한다면 나는 음악을 택하고 싶어. 연주를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들을 수 있으니까 들으면서 마음으로 느낄 수 있으니까 음악이 우리에게 주는 힘은 대단하다 생각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하고 그 음악이 나에게 하는 소리를 듣고 생활하는 그 모든 공간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열린 귀와 눈과 마음을 가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음악은 나를 그 시대로 데려가주기도 하고, 마음의 안정을 주기도 하고, 나 대신 세상을 향해 욕을 날려주기도 하는 놀라운 기능을 갖고 있지.


나의 음악취향은 너무 다양해. 다 좋아. (하드메탈 쪽은 좀 어렵지만) 가곡-클래식-발라드-랩-락-모던락 이런 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 같아. 보통 어릴 때 시끄러운 음악을 좋아하고 나이가 들수록 고상하게 클래식을 감상하게 된다고 하는데 나는 좀 반대로 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해. 10대 초반에는 가곡을 너무 사랑했고, 10대 후반부터 20대 까지는 클래식, 그중에서도 첼로와 피아노 독주를 사랑했지. 그 후에는 락밴드의 음악을 좋아했고, 요즘은 모던락이라 불리는 락과 발라드의 중간 정도의 음악이 좋은 것 같아.


음악을 들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드럼과 베이스의 소리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거든. 자세히 들으면 심장소리를 닮은 드럼과 베이스의 둥둥 둥둥 그런 소리가 들려서 집중해서 음악을 듣게 돼. 그 집중의 시간이 머리와 마음을 단순하게 만들어서 깨끗하게 해 주는 것 같아서 좋아. 오늘 아침은 차분히 이루마의 피아노 모음집을 듣고 있는 중이야. 파도가 잔잔히 일어나고 있는 서해의 드넒은 바닷가 앞에 그랜드 피아노를 놓고 연주하고 있는 사람을 상상하고 있는 중이야.


우리 딸의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해 줄 음악은 어떤 음악일까? 네가 항상 음악 속에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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