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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Jan 08. 2024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자연이 주는 위로와 치유의 힘을 믿어보자.

하이호이호이호~ 사랑하는 윰!


주말에 진짜 하늘에서 펑펑 눈이 내렸어. 요즘 우리나라 기상이 예전과 너무 많이 달라졌어. 아직도 교과서에 3한 4 온이라는 말이 있는지 모르겠네? 예전에는 우리나라의 겨울 기온이 3한 4 온이라고 3일은 춥고 4일은 따뜻하다고 했었거든. 그래서 3일 바짝 춥고 나면 4일은 날이 따뜻해지겠구나 하고 예측을 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도무지 예측이 되지 않는 날씨야.


사실 최근에 기상청 예보가 아주 잘 맞기 때문에 미리 일기 예보를 보면서 옷도 입고 가고 그러면 되는데 엄마는 이상하게 일기예보를 잘 안 보게 되어서 생각 없이 길을 나섰다가 눈비를 맞기도 하는데 비를 맞고 눈을 맞고 바람을 맞는 것도 가끔 그러는 것도 너무 좋더라고.

경복궁 민속박물관 길

눈 오는 밤 바라본 경복궁이 너무 운치 있어서 계속 바라보게 되더라. 머리에는 눈이 소복소복 쌓여갔지만 한참을 서서 바라보게 되더라. 급하게 떨어지는 눈이 아니라 천천히 천천히 내려오는 눈을 바라보니 마음이 편안해지더라.


도시에서는 눈을 오랫동안 두고 볼 수가 없어. 눈이 오는 속도와 거의 맞먹는 속도로 제설차가 염화칼슘을 뿌리면서 지나가는 바람에 눈이 쌓일 사이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 천천히 내리는 눈이라 밤새 계속 내릴 것 같았는데 금세 그쳐버리고 다음날 아침에는 그저 밤새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서 눈의 흔적만 남아있고, 그늘 진 곳에 만들어 놓은 눈사람만 그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지.


오랜만에 진짜 하늘에서 선녀님들이 내려오듯이 펄펄 내리는 눈을 보면서 너무 기분이 좋고 행복했는데 금세 사라져 버려서 아쉬웠거든? 그런데 오늘 정말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았어. 기분이 너무 좋아서 혼자 폴짝폴짝 뛰었지 뭐야. 용산 어린이 공원에 진짜 순백의 눈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데 상상치도 못한 광경에 나도 모르게 '와~'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어. 얼른 밖으로 뛰어나가서 사진을 찍었지. 햇살이 그 눈을 다 녹여서 다시 갈색으로 변하기 전에 얼른 사진을 찍었어.

용산 어린이 공원 설경

저 넓은 들판 어딘가에서 러브스토리나 러브레터의 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니? 

아! 이런 오래된 영화를 이야기하면 못 알아들을 수도 있겠구나. 음... 최근에 본 영화들은 주제가 너무 심각하고 또 주로 음모, 폭력, 살인, 미래 이런 주제가 많아. 사랑하는 연인이 주인공인 슬프지만 아름답고 마음 깊이 따뜻함이 남는 그런 영화를 본 기억이 없어. 안타까운 일이네... 러브스토리는 무려 1971년도 작품이고 러브레터는 1999년 작품이니까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영화들이지. 그 이후로도 수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지만 이 두 영화처럼 강하게 각인되는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


러브스토리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은 지금도 눈이 내리는 것을 볼 때마다 흥얼거리게 되고, 끝없이 펼쳐진 눈밭 위에서 '오겡끼 데스까? 아타시와 겡키데스!'이렇게 외쳐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 영화가 이토록 아름답게 오래 기억되는 것은 스토리보다는 그 장면의 힘이고 설경의 힘일 거야.

요즘 너는 하늘을 얼마나 자주 보니? 엄마는 하루에 한 번은 하늘을 올려다 보고 도시에서는 보이지 않는 저 멀리 지평선을 바라본다. 오늘은 공원의 설경을 한참 바라보았지. 하얀 눈이 반사하는 햇살이 마음의 근심을 비추는 것 같았고,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치워지지 않은 드넓은 눈밭이 눈앞에 펼쳐지니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어.


그리고 또 오늘은 하늘이 어찌나 높고 푸른지 그 색을 사람의 손으로 다른 도구로 담아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진짜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고 청명한 하늘을 한참 올려다 보고 나니 눈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지.


사실 5분 정도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하늘과 이야기하거나 땅을 들여다보면서 개미와 대화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거든? 그런데 그 일이 큰일이 되는 날이 오더라.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안 나는데 내가 하늘을 올려다본 것이 언제였더라? 하늘이 어떻게 생겼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올려다보니 까만 하늘에 별은 안 보이고 가로등 불빛이 아스팔트에 반사되어서 반짝이고 있는데 아스팔트가 밤하늘 같아 보여서 울컥 눈물이 날 뻔했지 뭐야?

 

살다 보면 햇살이 좋아도,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아무런 느낌이 없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그 순간은 잠시 멈추고 쉬어야 할 순간이야. 계절이 변하는 것에 몸과 마음이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건 지쳐있다는 뜻이거든. 아마도 그 밤 엄마도 많이 지쳐있었던 것 같아.

 

사랑하는 딸 윰! 누구에게나 지치고 힘든 순간이 닥쳐오는데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사람을 위로해 주는 것은 자연이야. 사람이 자연에게 아무리 나쁜 짓을 많이 해도 자연은 여전히 따뜻하고 넓은 품으로 우리를 안아주지. 네가 눈밭에서 뒹구는 것도 좋아하고 눈 위에서 뛰어다니고, 눈사람 만드는 것도 여전히 좋아해서  참 다행이라 생각해. 오래도록 자연이 주는 신비로운 순간에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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