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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딩누크 Dec 12. 2021

추식구근 튤립 심기

자처해서 겨울나기

다행히 늦가을에 이사와 정원손질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쑥쑥 자란다는 잔디 또한 바쁜 나를 성가시게 할 틈이 없었다. 이미 생장을 멈춘 것 같았다. 워낙에 전주인분께서 꽃을 잘 가꾸셨던 분이기에 나는 늦은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국화들과 천일홍을 실컷 맛볼 수 있었다. 하물며 차나무의 하얀 꽃까지.


그래도 명색이 전원주택인데 내년 봄이면 예전 같은 아기자기하고 스쳐 지나가도 아 손이 많이 간 정원이군 소리는 못 듣더라도. 집주인 바뀌니 저 정원 좀 봐 형편없잖아 라는 소리를 피해야겠다는 의지로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살펴본다.

차나무 꽃과 천일홍

가을에 심을 수 있는 꽃

을 검색하다 나는 추식구근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다. 말 그대로 가을에 심는 양파와 같은 구근이라는 뜻인데 튤립 수선화 히야신스 등 양파와 파 느낌의 줄기와 잎사귀 그리고 꽃 중에서도 상당히 색상이 비비드 해서 존재감이  상당한 꽃들이다.

나는 땅이 얼기 전 심어야 한다는 소리에 예쁜 색상 네 가지를 선택해 남편과 아이와 튤립 구근을 정원에 심었다. 생긴 건 꼭 마늘이나 양파 같은데 땅속에서 겨울을 날 수 있다니 참으로 신기했다. 아무리 제가 명색이 봄의 전령사라 하지만 나는 튤립이 겨울을 그 춥디 추운 땅속에서

날 줄이야 생각도 못했다.

십 센티 이상 땅을 파고

구근을 넣고

흙을 덮고

“겨울에 추울 거야. 우리 낙엽을 좀 긁어다 이불 덮어주자.”

나는 아이에게 낙엽을 긁어오자 전한다

물도 뿌리고 그렇게 내년 봄을 기다린다.

“정말 추울꺼야 그치?”

하지만 내년 봄이면 견딘 고통은 대수롭지 않았다는 듯 얼굴을 내밀겠지.


누군가는 성공의 비결이 실패도 아픔도 견뎌낼 수 있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직장인으로 성공하려면 내가 좋아하는 일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쓴 것 단것 신 것 모두 다 맛봐야 한다고 그리고 참아내야 한다고.


따뜻한 봄에 씨를 뿌려 여름에 나타나는 꽃들과는 달리

늦가을 초겨울

땅이 아직 얼지 않은 상태에서 땅속 깊숙이 들어가 나는 얼른 꽃을 피워보겠다며

눈과 추위를 견뎌낸 튤립이 이른 봄 누구보다 빨리 가장 예쁜 모습으로 피어나는 건 인고의 시간에 대한 자신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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