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딩누크 Dec 31. 2021

눈 그리고 보일러 고장

전원주택 낭만만 있는 게 아니라고

친정엄마는 혹여나 수도가 동파할까 전전긍긍하셨다.

날씨가 좀 추워지니 엄마는 전화로 조금이라도 추우면 수도 얼지 않게 잘 동여메놔라고 말씀하셨다.

남편에게 겨울에 수도가 얼면 큰일이래. 보일러까지 고장 난 다고 하니까 꽁꽁 싸놔야 한대라고 전했다.

남편은 "이미 해놨어. 자 봐" 하면서 보여준다. 수도관을 보온재로 싸놓았지만 내가 볼 때 남편이 해 놓은 것은 엄마한테 혼날게 뻔했다. 속으론 눈도 안 오는 나라에서 살아왔던 사람이 한국에서 한겨울 주택살이를 어떻게 알겠어하며 한숨을 쉬었다.


어제는 눈이 제법 내렸다. 아이가 내내 기다리는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 수 있는 정도의 눈은 아니었지만 어제 낮 회사에서 반차를 내고와서 창밖으로 본 풍경은 온 세상이 하얗게라고 할 정도의 눈이 오긴 했으니까 말이다. 아이와 레고를 만들었다 부수고 하며 창밖으로 눈 내리는 풍경을 보니 정말 행복했다. "눈 오는 날은 핫 초콜릿을 마셔야지~"하고는 아이와 핫 초콜릿도 만들어  마셨다.


밤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 여느 날처럼 아이가 일어나기 전 일층에 내려가 거실과 주방의 보일러를 높이려는데 이게 웬걸

보일러가 꺼진 것이다. 아차 싶었다.

보일러실에 가보니 보일러에서는 물이 새고 있었다.

남편을 불렀다. 얼른 좀 가봐.

남편은 두꺼비집을 보더니 물이 새서 아마 누전차단기가 내려간 거 같다고 했다.

밖에 나가보니 수도관 하나는 얼어 있었다.

"거봐. 내가 더 꽁꽁 싸놓아야 한다고 했지. 물이 이렇게 얼 정도니까 보일러도 얼은 거겠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 한국에서 주택에 살아보지도 않았잖아." 나는 괜한 남편한테 아침부터 심통을 부렸다.

주택이 추워서 살기 꺼려졌던 나의 마음이 구석에 숨어있다 폭발한 것이다.  

마치 주택살이가 남편 때문이었던 것처럼


9시가 되기도 전에 전화한 보일러 사무실에서는 내가 28번째 손님이기 때문에 오늘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죄송한데 좀 빨리 안될까요... 보일러에서 물이 새니까 누전 위험도 있고 해서요..." 하지만 어제부터 접수된 건도 있기 때문에 어려울 수 있다는 게 답변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일단 전원을 다 뽑은 채로 보일러 수리 선생님을 기다렸다.


엄마는 감기 걸린 손자가 걱정되어 직접 집에 오셨다.

 그러니까 주택은 추운데 우리 아기가 이렇게 추우니까 감기가 들지...

그러니까 수도관이랑 동파 안되게 잘 싸놓으라고 했지...

우리손주가 이렇게 추워서야 되겠나...

내일도 토요일인데 못 고치면 우리 아기는 추워서 어떡하나... 할마 집에 데려가야겠다 하셨다.


모른 척하다가 알겠어 이따가 가서 수도관 동여 메 놓을게 했다.

사실 볕이 드는 낮에는 꽤나 따뜻했지만 햇볕이 가시니 금세 온기가 사라져 버려 엄마 말씀을 들을걸 후회가 되기도 했다.


남편과 나는 아이와 함께 별수 없이 전기히터를 사러 마트에 갔다. 히터를 사자마자 보일러 사장님께 전화가 왔다. 집 근처를 수리하러 왔는데 시간이 좀 비니 우리 집을 봐주시겠다고 하시는데 이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결국 문제는 동파가 아닌 보일러의 모터라고 하셨고 교체비가 12만원 나왔다.


수도관 동파 때문이 아니라 모터 때문이라고 남편에게 전하자 남편도 다시 기세 등등 해 진 모습이다.

내가 아닐 줄 알았어. 수도관 때문이라니. 수도관 하고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고!


괜한 남편한테 하루 종일 툴툴 댄 게 내심 미안했지만 어쨌든 우리 세 식구는 오늘 저녁 히터 때문에 그리고 보일러 덕분에 따뜻한 저녁밥을 온전히 먹을 수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수도관 동파를 막기 위한 인터넷 탐색을 좀 해 보아야겠다.

혹시 눈이 오게 되어도 보일러, 물 걱정 않고 전원주택의 진정한 낭만을 즐기기 위해서 말이다.






이전 08화 주택, 불편하다구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