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대노 Feb 25. 2022

이기고 삽니다.

몰입하는 습관이 일상이 되면......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다.

타고난 재능이 없으면 성실함이 무기가 되어 이겨야만 한다.     


평생을 공부만 하며 살다가, 직장을 그만두면서 테니스를 배우게 되었다. 연장 들고 하는 운동은 처음이었다.

내가 살면서 이만큼 시간을 쏟고, 노력을 더했는데 이렇게까지 못한 종목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손으로 던져주는 공도 못 받아, 그 공이 튀는 대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테니스장에서 나를 구경하는 다른 수강생들이 한 마디씩 던지는 말은 비수가 되었다.

“그냥 하던 공부나 해!”

“네가 공을 치는 거냐, 공이 너를 치는 거지!”

엄마가 대학만 가면 다 된다고 했는데, 운동신경은 대학, 대학원만 10년을 다녔다고 해서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었나 보다.


열심히 하는데, 잘 못하는 나를 위로하겠다고 나이 많은 우리 할아버지 코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쟤는 머리가 좋아서 게임 뛰면 잘할 거야!”

다른 수강생들이 비웃으며 말했다.

“야! 넌 어떻게 공을 치길래 머리 좋아서 잘 칠 거라는 소리를 듣는 거냐! 우리도 좀 가르쳐줘 봐라”

오기가 생겼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나서 매일 9시 테니스장으로 달려갔다.

레슨 30분을 받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 연습.

오후 1시까지 연습하고, 코치님과 점심을 먹고, 아이 하교 시간까지 또 연습을 했다.

매일같이 5시간 이상 테니스를 쳤다.


노력하는 내가 예뻤던지, 할아버지 코치님은 내 자세를 봐주고 또 봐주셨다.

실외 코트였음에도 비가 부슬부슬 오는 것쯤은 내 연습을 방해할 수 없었고, 눈 오는 날은 코트 위의 눈을 쓸고 연습했다. 기온이 34도가 넘는 폭염에도, 영하 15도의 한파에도 그렇게 연습했다.

재취업으로 운동을 그만둘 때까지, 2년이 넘도록 매일 그렇게 연습했다.

1년이 지나자 남편이 말했다.

“이제 취미로 3년 정도 친 사람들만큼 치네. 운동 신경이 그 지경이어도, 어릴 때부터 운동시켰으면 금메달을 땄을 거야!”          




이런 깡과 오기는 내가 살아오는 내내 계속되었고, 남편과 함께 하는 일상 곳곳에서도 발현되었다.

남편과 많은 취미를 같이 한다.

게임도 같이 하고, 그림도 같이 그리고, 사격도 같이 배우고, 테니스도 먼저 시작한 남편의 권유로 하게 되었다.     


내가 박사과정일 때, 남편은 직장인이었다.

남편이 하는 RPG (Role Playing Game, 플레이어가 게임 속 하나의 캐릭터를 맡고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 방식) 게임에 관심을 보이자, 남편이 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남편은 토요일 오전에는 출근을 해야 하던 때라 일찍 잘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반해, 난 특별한 실험 스케줄이 없으면 주말은 놀아도 되던 때였다.

남편은 다음 날을 위해 잘 수밖에 없고, 나는 계속 게임해도 되었다!

남편이 나보다 훨씬 먼저 시작하였지만, 남편이 나보다 레벨이 높은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매주 금요일마다 밤새워 게임을 하였다.

내 레벨이 남편보다 높아졌다. 그날로 게임을 그만두었다.

처음부터 내 목표는 남편이었다. 게임이 재미있어서 한 게 아니었다.        

   

여세를 몰아, 남편과 권총 사격을 배우러 같이 다녔다.

우리의 취미는 모두 남편의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 테니스도, 게임도, 사격도 모두 시작은 남편이었다.

자세를 배우고, 총알을 장전하고, 발사!

남편은 2시간 동안 총알 100개 1통을 다 쏘지 못한다. 총알을 장전하고, 자세를 잡고, 조준을 하고, 다시 자세를 잡고 조준을 하고, 또다시 자세를 잡고 조준을 하고…….

나는 2시간이면 총알 200개는 거뜬하다. 장전, 조준, 발사, 발사, 발사, 발사. 발사.

남편은 자세를 잡고 초점을 맞추지 못하면 발사하지 못하는데, 나는 팔을 내리면서 초점이 맞는 그 순간에 발사한다.

스타일이 다르니 속도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나보고 대충 쏜다고 온갖 비난을 퍼붓는다.

연습의 마지막은 내기 게임.

10발을 연습지 한 장에 쏘고, 총점을 매긴다.

근사한 차이로, 내가 이긴다.

나보고 대충 쏜다고 뭐라 하던 애 어디 갔니?           


남편 77: 나 81 근소한 차이지만, 내기는 매번 나의 승리로 끝났다.

    

남편과 미술학원을 같이 다닌다.

'밥로스 아저씨'처럼 유화를 그리고 싶다는 남편을 따라 그렇게 붓을 잡았다.

남편은 섬세한 사람이라, 그림의 디테일까지 신경 써서 묘사하고, 잘 그린다.

초보인 우리들은 다른 사람의 그림을 출력하여 따라 그리는 방식으로 수업을 받는데, 내가 그림 그리는 것을 보며 남편이 항상 말한다.

“그림을 보고 그리는 거 맞지?”

음. 타고난 실력으로는 남편을 이길 수가 없다.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잘 그린 것처럼 보이는 색감 위주의 그림을 선택한다. 디테일은 필요 없다.

남편은 세 달에 한 작품 정도 완성하는데, 나는 여유롭게 한 달에 한 작품씩은 뽑아낸다.

다작이다.

우리 집 벽엔 내 그림이 훨씬 많이 걸려있다.          


나의 그림 (왼쪽)과 남편의 그림 (오른쪽)


나는 주어진 인생을 그냥 열심히 산다고 생각했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더 이상 열심히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전원생활을 하면서는 열심히 사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나를 내려놓았다고 오해한 순간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우선순위에서 중요한 것에만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하지만, 나는 사소한 것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큰일을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기 싫어서가 아니라, 이왕 시작한 거 잘하고 싶어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게 나란 사람이었다.

몰입은 일상이 되었다.     


열심히 글을 썼다. 매일 썼다. 꿈에서도 썼다.

잘 써서가 아니라, 습관처럼 몰입이 돼서.     

이전 08화 ‘쿨하게’ 사과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