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童詩 (명사) [표준국어대사전]
1. 주로 어린이를 독자로 예상하고 어린이의 정서를 읊은 시.
2. 어린이가 지은 시.
도서관에서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어린이 문학 창작교실> 강좌를 수강 신청해서, 매주 월요일에 수업을 하게 되었다. 성인을 대상으로 동시 창작을 하는 수업으로, 함축적이면서 아름다운 그림 동화를 쓰고 싶었던 나에게 필요한 내용이라고 생각되었다.
첫 수업은 강사님 소개와 앞으로의 학습 계획을 포함한 오리엔테이션 정도로 마쳤는데, 수업 종료 10분을 남겨두고 강사님이 각자 free writing을 해보라고 하셨다.
막연하게 자기가 쓰고 싶은 걸 쓰는 시간이지만, 동시 창작 수업이니 매시간 동시를 한편씩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동시를 써보려고 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동시(童詩)란 문학에서 주로 어린이를 독자로 예상하고 어린이의 정서를 읊은 시, 또는 어린이가 지은 시를 말한다.
말 자체에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 것만 같은 강제성을 느낀 나는 볼펜만 만지작거리면서 빈 종이를 애타게 노려보았다. 성인이 된 이후 무슨 일이든 SWOT 분석*을 통해 논리적 결정을 하려고 애써온 인간인 나에게는 애초에 없었을지도 모를 동심을 찾아내는 일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까?
*SWOT 분석
기업의 내부 환경과 외부환경을 분석하여 강점(strength), 약점(weakness), 기회(opportunity), 위협(threat) 요인을 규정하고 이를 토대로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기법으로, 미국의 경영컨설턴트인 알버트 험프리(Albert Humphrey)에 의해 고안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SWOT 분석 (시사경제용어사전, 2017. 11., 기획재정부)
강사님은 모든 성인에게는 어린 시절이 존재했기에 누구에게나 동심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건 선생님이 저를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이십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말도 잘 못하고 (안 하고?), 누군가와 어울려 놀기보다는 구석에서 책만 읽던 의뭉스러운 아이였단 말입니다!
뭐라고 끄적여야 한다는 중압감에 창밖을 내다보았다. 3월, 봄, 꽃샘바람, 햇빛, 새싹.....
떠오르는 단어를 나열하다가 앞마당에 한창 터지고 있는 새싹에 눈이 갔다. 어제 핸드폰으로 찍어둔 사진을 한참 보다가 이렇게 썼다.
3월, 새싹
박대노
고개를 삐쭉 살짝 엿볼까
코를 킁킁 냄새를 맡아볼까
혀를 날름 맛 한번 볼까
바람에게 물어봐
심술 맞은 바람이 쌩 하고 지나간다.
아니야, 아니야, 아직은 아니야.
해님에게 물어봐
보드라운 해님이 수줍게 웃어준다.
초록초록 꼬물이가 톡 벌어진다.
오! 첫 작품인데 이 정도면 괜찮은데? 아이가 본 것처럼 직관적으로 잘 썼어!
나는 자존감이 무척 높은 인간임에 틀림없다. 뭐 이렇게 소박하게 만족하는지…….
기분 좋게, 남편에게 카톡으로 나의 첫 동시를 전달했다.
“봐라, 남편아, 내 첫 동시다!”
한참 동안 답이 없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야? 왜 답이 없어? 나의 첫 동시가 어떠냐고!”
“응, 잘 썼어.”
“그게 다야? 마음에 안 드는 거지? 뭐가? 왜? 어디가 어떤데?”
“아니야 잘 썼어.”
“솔직히 말해봐, 화 안 낼게! 너는 나의 꿈을 응원하지 않는 거야? 조언을 해줘야 할거 아냐!”
한참을 망설이던 남편이 말했다.
“봄인 건 알겠어. 근데 너무 직관적이지 않냐? 함축적인 의미를 담는다거나, 어떤 메시지를 전달한다거나…….”
“네가 동시를 알아? 동시가 뭔데? 아이의 마음으로 쓰는 거잖아! 꼭 함축적이거나 메시지를 줘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무지한 거야!”
소리를 꽥 지르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래, 나도 안다 이놈아. 내 동시가 너무 동시스러워서(?) 성인이 쓴 동시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것을!!!
10분밖에 시간이 없었다고! 처음 쓴 건데, 꼭 그래야만 했냐!!!!
밤새 동시 쓰기로 악몽이라도 꾼 것일까.
새벽에 벌떡 일어나 핸드폰 노트를 열고 동시를 적기 시작했다. (또! 몰입의 시작인가 보다.)
남편이 눈뜨기만을 기다렸다가 나의 두 번째 동시를 들려줬다.
먼지
박대노
톡토도독
빗방울 한 방울, 한 방울, 톡, 토도독
아스팔트 위로 번지는 먹물에
톱톱한 냄새가 올라온다.
바람 따라 날고 싶던 흙먼지가
아스팔트 위에 내려앉는다.
빗방울 따라 흘러간다.
“음……. 좋아지겠지, 넌 잘 쓸 수 있을 거야!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됩니다, 박대노 작가님”
“왜? 이것도 함축적이지 않고 직관적이라고 지금 무시하는 거야?”
“아니야, 아니야, 잘하게 될 거라고 했잖아”
출근 준비를 하려고 일어서는 남편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이 시에 함축된 내용이 뭔지 알아? 잘 나가던 내가 남편 만나서 주저앉았다는 내용이잖아!”
“아! 그렇게 깊은 내용인 거야? 큭”
남편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동시를 들었을 때보다 더 큰 비웃음만 남기고 방을 나갔다.
새벽 2시 반, 자다 깨서 핸드폰 노트를 열고 또다시 동시를 써본다. 이 정도면 병이지 싶다. 화가 나거나 부끄러워서 이불킥할 상황도 아닌데, 왜 자꾸 자다 깨서 이러고 있는지 나도 나를 모르겠다.
어둠별
박대노
황금빛 동그라미 떨어진다.
파란빛 바탕에 자줏빛 얼룩 스며들고
젖어든 얼룩이 쪽빛 어둠을 부른다.
어둠별* 마중 나온 나는 소원을 빈다.
네 마음 열구름** 지나가는 길목에 기다림 빛이 되어 무심히 반짝이라고
너를 만난 내 그림자가 가로등 불빛에 환하게 웃는다.
* 어둠별
명사 해가 진 뒤에 서쪽 하늘에서 반짝거리는 금성(金星). [표준국어대사전]
어둠별은 제 스스로의 빛이 어두워서가 아니라 해가 져서 사위가 어두워짐을 알리는 별이라는 데서 그런 이름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 사전, 박남일, 2004. 서해문집)
** 열구름 [네이버 지식백과]
바람에 밀려 지나가는 구름. 열구름이 지나가면 대체로 날이 개고 맑은 하늘이 나온다.
노을 지는 풍경을 생각하면서 시를 쓰다가 갑자기 한창 외모에 신경 쓰는 사춘기 딸아이가 떠올랐다. 아이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잘 거쳐 가기를 바라는 마음과, 힘들어질 때 가장 먼저 알아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적었다.
동시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동시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내 아이를 생각하며 떠오르는 내 마음을 표현했으면 됐지 싶다.
해가 뜨길 기다리며, 정확히는 남편이 깨어나길 기다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남편 뒤통수에 대고 주문을 외워본다.
에필로그.
그렇게나 함축적 의미를 부르짖던 남편은 나의 세 번째 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배움이 부족한 내 탓일 게다.
남편 말대로 앞으로의 성장을 기대하며, <어린이 문학 창작 수업>을 열심히 수강하리라 다짐해본다.
© Bru-nO,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