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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노 Jan 24. 2022

남편이 그린 영정 그림

무지개다리를 건넌 내 새끼를 추억하는 방법

우리 가족 (남편과 나와 사춘기 딸)은 셋이 같이 미술학원에 다닌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딸의 미술학원을 알아보던 그때, ‘밥로스’ 아저씨처럼 유화를 그리고 싶다는 남편의 수줍은 고백을 듣고, 셋이 같이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난 그림엔 재능이 없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그림일기를 못 쓰겠다고 징징거린 덕에 엄마가 선생님을 찾아가 3학년 이상부터 쓴다는 줄 일기를 쓰게 되었던 37년 전 기억은 던져버리더라도,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다비드 조각상처럼 생기셨던 미술 선생님이 당신 손으로 거의 다 그려주시고도 “너는 손을 댈 수도 없게 그려놨냐”며 B를 주신 기억은 그림과 나의 관계를 더욱 어색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런 내가 가족과 취미활동을 같이 하기 위해 미술학원을 다니다니, 난 가족애로 충만한 사람임이 분명했다.  


남편과 나는 그림 그리는 스타일이 완전 다르다. 남편은 꼼꼼하고 치밀하게 한 작품 한 작품에 자신의 혼을 담는지, 한 작품에 3개월쯤 걸리는 반면, 나는 3시간이면 작품 하나를 뽑아내며 다작을 한다.

평소엔, 남편은 진짜 뭐든지 대충대충, 유유자적을 꿈꾸는 사람이고 나는 오와 열을 중시하는 완벽주의 추구자인데 왜 그림 그릴 때만큼은 서로 이렇게 달라지는지. 나야, 그림만큼은 애초에 재능이 없음을 알아서 완벽에 대한 의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치자. 남편아! 너 밥로스 아저씨처럼 그리고 싶다며? 그분은 30분이면 풍경화 하나를 그리신다고!!!!!!          




뭉치는 우리가 결혼 한 첫 해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스피치를 입양하고 싶어 찾아간 우리에게, 컵 강아지처럼 많이 안 자란다며 주먹만 한 크기의 강아지를 강매한 사장님 덕에 나에게 온 내 강아지. 눈도 못 뜨는 새끼를 사기 쳐서 팔아먹은 그 사장님 덕에, 2시간마다 분유를 먹이면서 애지중지 키운 우리 뭉치는 컵 강아지가 아닌, 8.5 kg의 양동이 만 한 개가 되었다.


뭉치는 손 한번 안 가는 개였다. 엄마가 바쁜 것 같으면, 저만치 떨어져서 눈으로만 엄마를 쫓는 착한 개. 그때는 몰랐었다. 그 아이의 그 눈빛이 나랑 놀고 싶다고, 살을 부비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눈 한번 떼지 않고 내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바라보는 것을 그저 얌전하게 엄마를 기다린다고, 착하고 예쁘다고만 나 편할 대로 생각했다.


그렇게 착하기만 한 뭉치가 2년 전, 용혈성 빈혈로 수혈을 받고, 매일 약을 먹으면서 6개월을 보내다가, 엄마가 집에 있는 날에 엄마 품에 안겨 죽어 달라는 엄마의 마지막 소원까지 모두 들어주고 나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뭉치의 49제(?) 날은 뭉치가 처음 우리 집에 왔던 12월 24일이었고, 그날 뭉치는 걱정하지 말라는 인사를 전하러 엄마 꿈에 나타나 줬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것까지 다 끄집어내어 뭉치와 내가 얼마나 특별한 인연인지를 얘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만, 때로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것들이 휘청거리는 그 순간에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뭉치를 그렇게 보낸 후, 지금 함께 사는 강아지들에겐 조금 더 내 살을 내주고, 조금 더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알면, 뭉치가 그런 나를 칭찬할까?




밥로스 아저씨가 되고 싶은 남편이 첫 그림으로 선택한 건, 그렇게 14년을 우리 곁에 살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뭉치였다. 뭉치가 죽기 전, 아빠가 너의 영정 그림을 예쁘게 그려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니만, 첫 그림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남편은 제대로 잘 그려냈다! 그 뒤로도 영정 그림으로 써야 한다며, 아직 4살이 안된 어린아이들의 그림까지 모두 그려내 거실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지만, 뭉치 그림만큼의 대작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개들을 좋아하지만, 산책 한 번 나가지 않는 남편에게 짜증 나는 날도 많았는데, 개들의 영정 그림을 보면서 아이들에 대한 남편의 마음이 내 사랑 못지않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은 용서가 된다.


사진도 동영상도 넘치게 많아 추억할 방법이 아무리 다양하더라도, 밥로스 아저씨만큼 빠르고 완벽하게 그리지는 못하더라도, 내 남편이 직접 그린 영정 그림으로 내 새끼를 추억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뭉치 사진과 남편이 그린 영정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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