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막는 미니 사과
남편은 매사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내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순간에도 흔들림이 없다. 마치 에이* 침대처럼. '흔들리는 편안함'은 시몬*인가? 아무튼.
화가 나면 막말을 하기도 하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필터 없이 쏟아내기도 하는 통에 남편 마음에 상처 준 날도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러려니’ 해주는 사람, ‘지금 이 순간 박대노가 잠시 화가 났구나’하고 생각해주는 사람, 그게 내 남편이다.
지인들은 남편 성격이 그러니 나랑 살 수 있는 거라고, 분명 내 남편 몸속엔 사리로 가득 차 있을 거라고들 했다.
그런 남편에게도 사과해야 할 일이 생긴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자극했기에 저런 남편이 화를 내겠냐고 하겠지만, 그건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나도 뭐라 말하기는 그렇다.
내 감정을 쏟아내느라 하는 막말에 반응하는 것도 아니고, 남편이 어떤 자극에 반응하는지는 정말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남편은 직접적으로 화를 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남편이 화가 났다는 건, 15년 이상 살다 보니 이제 바로 보인다. (남편, 내가 눈치는 좀 챙겼어!)
남편은 화가 나면 눈꼬리가 쳐지고, 입 꼬리는 수평이 된다. 처진 눈꼬리가 마치 ‘사탕 뺏긴 아이’ 같은 표정이라 나는 남편의 그 표정을 보는 순간 바로 알아챈다.
‘아! 내가 상처 줬구나.’
막말을 쏟아내던 입을 다문다.
정적이 흐른다. 1초, 2초, 3초.
원래 화가 없는 남편의 표정은 내가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아무 말하지 않지만, 잘못을 깨닫게 해주는 그 표정에 나는 ‘쿨하게’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다.
무릎 꿇는 게 뭐 어려운가? 잘못했으면 꿇는 게 무릎이지.
나도 안다. 이렇게 착한 남편이 화가 났으니, 내가 잘못한 게 분명하다.
그래서 남편의 그 표정을 보는 순간 조마조마해진다.
‘아, 남편이 내 말에 상처받았구나. 이건 내가 진짜 잘못했나 보다. 어쩌지.’
갑자기 소심해진 내 마음속엔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3초간),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사과밖에 없다.
남편의 눈을 보고, 진심을 다해 말한다.
“미안해. 내가 지금 한 말은 실수야. 사과할게, 정말 미안해”
남편은 ‘쿨하게’ 나의 사과를 받아준다. 그리고 다시 보살의 얼굴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