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은 인류학자인 모건의 이론을 토대로 원시시대에서 현대의 가족형태에 이르기까지 가족의 발전과정을 단계별로 설명한다. 혈연가족에서부터 시작하는 이 단계는 푸날루아 가족과 대우혼 가족의 형태를 거쳐 현대의 일부일처제에 이른다.
모건의 이론에 따르면 무규율 성교의 원시 상태를 지나 부모와 자녀 사이 간의 성교를 금지하는 형태의 ‘혈연 가족’이 가족의 첫째 단계로서 나타난다. 여기에서 형제간의 성교를 금지하는 ‘푸날루아 가족 형태’로 넘어가게 되는데 모건은 이러한 진보는 자연도태의 법칙이 작용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푸날루아 가족 형태는 군혼의 최고 발전 형태로 그려지는데 이러한 군혼 사회에서는 어머니만을 확인할 수 있는 생물학적 이유로 인해 모계를 중심으로 한 씨족이 형성된다. 그런데 씨족이 형성, 발전할수록 결혼이 금지되는 근친혼의 범위는 점점 넓어졌고 그로인해 ‘대우혼 가족’이 군혼을 대체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체제는 원시공산주의였으며 여성이 존중받는 모계중심사회였다.
유물론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던 엥겔스가 주목했던 부분은 ‘대우혼 가족’이 ‘일부일처제’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위에서 가족형태의 변인으로 지목되었던 생물학적 이유나 자연도태설이 아니라 오직 경제력의 발전으로 인한 사유재산제도의 등장으로 설명된다. 성교 대상의 범위가 좁아지면서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자신의 자식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생산력이 크게 증가하면서 그동안 바깥에서 생산을 담당했던 남성의 위치가 높아지게 된 것이다. 엥겔스는 대우혼 가족에서 남자가 자신의 재산을 상속할 자식을 확실시하기 위한 경제적 필요로 등장한 것이 ‘일부일처제’라고 설명한다.
엥겔스는 가족의 발전 과정을 때로는 생물학적인, 때로는 경제적인 변인을 예로 들며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특히 엥겔스의 이러한 논의는 원시시대 가정에서 존경받았던 여성이 어떻게 ‘세계사적인 패배’를 당했으며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며 사랑에 기초하고 있는 현재의 일부일처제를 다시금 뒤돌아보게 한다. 그러나 엥겔스의 기본적인 논리는 마르크스와 맥을 같이 하면서 마르크스가 가지는 여러 가지 한계들을 같이 가진다.
첫째로 엥겔스는 가족의 발전 역사를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경제환원론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엥겔스는 대우혼 가족에서 일부일처제로 넘어가는 과정을 경제적 이유만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매음 등과 함께 발전한 일부일처제는, 생산력이 크게 향상한 매우 최근까지도 남자에게는 사실상 일부다처제였다. 따라서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생산력 등의 경제적 이유 뿐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또는 심리적인 여러 관점에서의 설명이 필요하다.
둘째로, 엥겔스의 가족사회학적 논리의 종착역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지양’이다. 엥겔스는 생산수단이 사회적 소유로 된다면, 즉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면, 개인적 성애를 기반으로 한 이상적인 일부일처제가 이루어지며 그때에야 비로소 여성이 자유로운 존재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주장은 여성들을 노동자 해방운동에 동원할 수 있게 함과 동시에 여성의 해방을 노동자의 해방 뒤로 미룬다. 또한 엥겔스는 부르주아 계급과 달리 여성이 사회적 노동을 하는 프롤레타리아계급의 경우 남편과 아내 사이에 불평등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 주장 또한 노동자를 여성과 남성으로 구별하지 않으려는, 그리하여 여성 또한 노동자 해방운동의 일원으로 포함시키려는 엥겔스의 노력으로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