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입찰을 할 때면 복수의 업체에게 제안설명을 하게 된다. 나라장터나 홈페이지에 공개 입찰공고를 내어 참여업체를 모집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기존의 DB로 가지고 있는 리스트의 업체들에게 연락을 하여 참여를 요청한다. 복수의 업체라는 것이 워낙 범위가 넓은 의미라 평균을 내기는 쉽지 않지만, 내가 경험한 기업들의 경우 적게는 1~2개 업체 많게는 10개 업체까지 불러서 입찰하는 경우를 봤다. 물론 나의 경우는 10개 업체를 부르는 기업에는 그 입찰에 참여를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배가 불렀다'라고 빈정댈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도 삐쩍 마른 내가 그럴 리가.. 다만 10개 업체나 모집해서 입찰을 하는 의도 자체가 내 기준에는 불순(?)하고, 지극히 게으른 행위(2~3개의 좋은 업체를 찾기 위한 검증 자체를 사전에 하지 않은 이유이다)이며, 숫자만을 좋아하는 기업이라 생각이 되어 나만의 블랙리스트에 추가해버리는 편이다. 보통 그런 업체들은 갑질도 당연시 여긴다.
2~3개 참여업체와 경쟁을 하게 될 때면, 단순하게 프레젠테이션만 준비하는 단계를 넘어, 경쟁업체들의 상태나 성향 등도 파악해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우리 회사와 비교해서 매출액이나 실적 등이 우위가 있는지, 가격경쟁력이 좋은지 등에 대해서 분석해야 하는 일은 우리 프레젠테이션 준비만큼 중요하다. 특히 경쟁상대가 우리보다 모든 측면에서 월등하다고 생각이 될 때는 머릿속이 복잡해지게 되는데, 이럴 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거나 너무 상대를 의식하게 되면 우리 제안에 대한 확신이 떨어지게 되니 조심해야 한다. 확신이 떨어졌을 때, 그 느낌은 정말 거짓말처럼 고객에게 전달이 되니..
어차피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생각이 된다면 한 번쯤은 과감하게 판을 바꿔볼 필요도 있다.
업계 부동의 1위 업체와 함께 경쟁 PT를 했던 적이 있다. 다행히 그 1위 업체에서 오랜 시간 밤을 새우며 나름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나였기에(지분에 대한 얘기는 혼자 생각이다), 그 모회사를 상대로 어떻게 프레젠테이션을 펼칠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많은 고민들의 전제가 '어차피 숫자로 표기된 기업 재무 데이터에선 모두 떨어진다'였다. 난 당시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직은 젊은 혈기도 있다는 무모한 자신감과 함께..
판을 바꾸고 싶었다. 보통 업계의 프레젠테이션이 목차-전시개요-전시목적-참가목적-디자인 계획-운영-관리-제안사 소개 등에서 크게 변하지 않는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다. 난 고민 끝에 전시목적이며 참가 목적이며 하는 경쟁사와 비교했을 때 내용도 그리 다르지 않을 거추장스럽게 보이는 것들을 전부 걷어냈다. PPT의 첫 표지가 띄어져 있는 상태에서 약간의 유머요소를 넣은 라포 형성 스피치에 평소보다 긴 시간을 할애한 이후에 2번째 페이지에서 바로 디자인 계획을 띄웠다. 그리고, 디자인 계획 이후에 나오는 운영-관리 등의 페이지에서는 기존에 우리 회사가 가지고 있던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표현된 기본 포맷을 버리고, 실무자 입장에서 정말 필요한 디테일한 내용을 직접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언어로 넣어 설명을 했다. 멋을 부리는 것보다는 조금은 어설프게 보이더라도 열심히 하겠다는 자세가 전달되기를 바랐다. 현재 정점에 서 있는 선수보다는 이제 막 프로에 데뷔하여 실력을 보이는 루키처럼..
무모해 보였을 수도 있다. 기본을 중시하는 사람에게는 기본기 부족처럼 보일 수 도 있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본 강호의 고수들의 눈에는 초식만을 사용하는 어설픈 초심자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잠재적인 가능성을 가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이번에는 그 기회를 얻지 못하더라도, 다음번에 다시 그 자리에 섰을 때 기억할 수 있는..
예상과 같이 그 프로젝트에서는 수주하지 못했지만, 프레젠테이션을 통해서 확실한 인상을 안겨줬고, 다음 프로젝트에서는 보기 좋게 승리를 하였다. 두 번째 프레젠테이션의 기획이 좋아서 수주했을 수도 있지만, 첫 번째 남겼던 인상 깊은 기억이 전혀 무의미했다고는 평가하지 않는다.
더 높이 뛰기 위한 일보 후퇴. 이것이 게임 체인저의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