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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고 싶은 유혹!

여덟 번째 이야기..

by 홍실장

우리 집은 종갓집이다. 내가 그 유명한 종갓집의 장손이다.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종갓집은 시골마을에서도 가장 큰 집과 제법 넓은 논밭도 가지고 있던데, 아쉽게도 난 그런 드라마 주인공이 되지는 못했다.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1년에 제사가 8번 정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심지어 설날과 추석을 뺀 횟수였고, 5대까지 지낸다고 알고 있는데, 8번인 이유는 두 분의 조상님이 객사를 하셔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그저 또래의 사촌들이 많이 오니 함께 오락실을 가는 것이 좋았었는데, 조금 머리가 커서 고등학생이 되었을 즈음에는 좁은 집에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종갓집이라고 하여, 첫째라 하여, 물려받은 재산 하나 없는 큰집에 다들 좀 그래도 먹고산다고 하는 작은아버지들과 고모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그나마 조금 있는 먹을 것들도 축내고 간다고 생각했었는지, 지금도 솔직히 그리 반갑지는 않다.


이제 시간이 제법 흘러, 어머니는 지금의 내 와이프인 며느리도 보게 되었고, 작은아버지들과 고모들 또한 며느리와 사위를 받았으니 더 이상 우리 집에는 모이지 않는다. 조촐해진 건 모이는 사람들의 숫자만이 아니었다. 연 8회의 제사는 젤 위로 2대는 자르고, 나머지 3대까지도 부부를 함께 지내게 되니 제사의 횟수도 3회로 줄어들었다. 성인이 되어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가지게 되었는데, 참 늘지 않는 것이 제사상 거드는 일이다. 어렸을 때 싫어했던 기억 때문에 관심을 갖지 않아서 인지, 큰 상위에 놓이는 음식들의 위치를 그렇게 오랜 시간 봐왔는데도 매번 놓으면서도 놓을 때마다 헷갈린다. 조상님도 참 답답해하실 것 같다.



집에서의 내 위치가 이제는 제사상에 음식을 올려놓을 정도로 충분히 나이를 먹었듯이, 회사에서도 내가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을 정도로 직위가 올라갔다. 대략적인 스케줄 관리를 위해 회의를 할 때면, 예정되어 있는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큰 주제나 방향을 던져주고는 확인이 가능한 단계까지 일이 진행되었을 때, 슬쩍 보고 의견을 다는 정도이다. 가끔 동료(부하직원)들이 작업을 하는 것을 옆에서 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조상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생긴다. 처음에는 그래도 멘토로서 옆에서 지켜봐 줘야지 마음을 먹고 답답해도 참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편이지만, 인내심의 한계점은 그리 오래 날 기다려 주지 않고 찾아온다. 결국에는 조상님이 직접 제사상을 차리게 되는, 그런 일이 결국 벌어지고 만다. '유혹'을 참지 못한 것이다.


조상님이 제사상을 직접 차리고 싶은 유혹. 차라리 내가 하는 게 훨씬 편하겠다 싶은 유혹. 남의 일에 훈수 두기는 쉽다. 남의 일을 대신해주기도 쉽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넘지 말아야 하는 유혹이다. 귀찮더라도 내 일은 프레젠테이션의 내용을 '고치거나', '의견을 주는' 것이 되어야 하고, 그런 수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기획회의 때 친절하고 자세하게 이해하기 쉽도록 방향을 지시해줘야 한다. 넘고 싶은 유혹을 넘는 것, 요즘 유머로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넌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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