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시작한 지 4년 정도 되었다. 처음 골프연습장을 찾았을 때, 3번 정도는 놀란 것 같다. 첫 번째는 골프를 배우고자 하는 그 많은 사람들에 놀라고, 상상 이상으로 비싼 레슨 비용에 놀라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골프라는 운동의 어려움에서 놀랬다. 채를 잡는 법을 알려주고는 계속 허공에 휘둘르는 연습을 시키니, 재미가 있을 리가 없다. 조금씩 휘둘르는 속도가 나고, 이제 슬슬 공을 좀 맞추어서 소리가 딱! 하고 나니 그제야 조금 재미가 있어진 듯하다. 그러나 역시 40년 인생 동안 갈고닦은 나의 조급함은 긴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결국 3개월 레슨에 필드라는 곳을 나가 20만 원에 가까운 돈을 지불하고는 기분만 상해서 돌아온다.
처음.. 시작..
분명히 설레는 단어인데, 먹고사는 문제와 맞닥뜨리게 되면 그리 유쾌하지 않다. 유쾌하지도 않은데, 처음부터 듣게 되는 조언들은 잔소리와 같이 들린다. 대학 4년간 해본 게 있으니, 당연히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오히려 조언해 주지 않을 때는 내심 내 실력에 대한 믿음 때문인 것 같기도 생각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돈키호테가 없다.
그래도, 그때 내 나이 20대 후반, 에는 아무 불평, 불만 없이 자신감 하나만으로 3일 밤낮을 세서 100장 정도의 페이지를 만들어 팀장님에게 드렸었다. 당시 팀장이라는 사람은 그 100장 정도의 페이지를 자세히 보지도 않고 대충 보더니, 중간중간 빼낸 페이지 대여섯 장을 들고는 '요정도는 쓸만하네'라고 얘기하며, 책 뭉치를 적당한 높이까지 던져 내 책상위로 정확히 착지시켜주는 엄청난 내공을 선보였었다.
지금도 가끔 그때 생각이 난다.
특히, 후임들이 들어와 책상에 앉아 열심히 파워포인트를 켜놓고, 키보드를 매우 쳐라! 할 때면 더 그때 생각이 난다. 누구나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 친절하거나 가르쳐주거나, 매몰차게 던져놓아도, 내가 보기에 결과는 비슷하다. 남자들에게는 군대 신병 때의 기억과 아주 유사할지도 모르겠다. PPT를 작성할 때, 첫 페이지에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매달려 있는 모습을 가끔 본다. 대체 왜 그러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어렵지만, 아마도 옆에서 누군가의 조언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30여 장 이상의 PPT를 보통 작성한다고 기준을 잡으면, 첫 페이지는 30분의 1 수준의 불과하다. 첫 페이지에서 안 풀리는 이유는, 대부분 가이드(개요)가 없기 때문이다.
PPT를 하기 전에 이면지 같은 막 글씨를 써도 되는 종이를 꺼내놓고, 전체적인 방향과 개요를 잡아놓는 것이 좋다. 목적을 생각하고 주제를 정한 뒤에, 그 주제에 1,2,3번 넘버링으로 소주제를 정하고, 다시 그 소주제에서 퍼져나가는 이야기를 1-1, 1-2, 1-3등으로 써 봐야 한다. 그래야 생각이 정리가 된다. 이런 개요 정리가 끝이 나면, 사실 PPT는 일도 아니다. 내 경험을 보면, 개요 정리하는데 전체 PT 준비시간의 50% 이상이 소요가 된다. 게다가 개요 정리를 하면서, A4지 한 장이 PPT 한 페이지라고 생각하고, 넣어야 하는 글귀와 생각하는 이미지를 네모 이미지 칸 안에 정리해 두면, 나중에 PPT 작업은 더 빨라지고, 이미지를 써칭 하는 시간도 확실히 절약이 된다. 시험기간이 다 돼서 밤샘 공부를 하듯이, 개요 정리도 없이 PPT에서 모든 생각을 정리하면서 작업을 한다는 것은 그 시작 자체가 틀린 것이다.
개요 정리 없이 PPT를 작업하는 것에 대한 문제는, (물론, 직접 해보면 더 잘 알겠지만) 나중에 수정을 해야 할 때 좀 더 구체적으로 문제가 드러나 보인다. 어떤 한 페이지에 수정을 하고 나면, 앞 뒤 페이지에 개연성이 깨지고, 결국 전체 PPT를 수정해야 하는 소모적인 일을 반복하게 된다.
모든 일에는 그 시작점이 중요하다.
특히 PPT 작업은 마무리 단계에서 문제점이 발견되면 제법 억울함도 든다. 그러니, 진전이 조금은 느리더라도 그 보폭이 원하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한걸음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 한걸음을 경험담으로 알려주는 주변의 상사나 동료들은 그 한걸음이 가능하기까지 많은 노고와 시행착오가 있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