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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차만별의 기업문화

아홉 번째 이야기..

by 홍실장

대리로 한창 필드에서 종횡무진(?) 할 때였다.

군대에서도 일병이 가장 일을 많이 한다고 하니, 회사에서는 대리가 딱 그 정도 일듯 싶다. 과장, 부장님의 지시는 지시대로 이행하면서 분위기 파악 못하는 신입사원들도 봐줘야 하는데 그것 또한 큰소리 내기에도 어려운 위치이다 보니 눈치 보며 조곤조곤 숨어서 가르쳐줘야 했던 시기다. 지금이야 회사 분위기가 수평적 직장문화가 보편화되어 과거에 비해서는 위계가 적다고는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일주일에 정시 퇴근해서 집에 가는 날이 1~2일 정도였을 정도로 많은 업무 속에서 여기저기 눈치도 봐야 하니 죽을 맛이었다.


선배의 프레젠테이션을 서포트하기 위해 함께 방문했던 협회가 있었다. 방위산업의 여러 협회 중 한 곳이었다. 방위산업 특성상 외국과의 거래에 있어서 나라의 협회를 무조건 통해야 하다 보니, 다른 산업의 수많은 '협회'라고 명칭 하는 곳들에 비해서는 '절대 갑'의 위치에 서 있다. 산업 내 기업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협회들은 아마 상상도 못 할 위치이며 분위기일 테다. 아무래도 방위산업이다 보니, 옷차림도 특별히 단정하게 준비를 하고, 혹시나 눈이 찌푸려질 만한 튀는 액세서리 등이 있는지 한번 더 확인을 해야 했다. PT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나름대로 절도 있게 인사를 했을 때, 가장 멀리 있는 테이블의 상석 위치에서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다.

'목소리에 자신감이 있네요. 그래요. 군 복무는 어디서 하셨나요?'

대리인 나는 속으로 '역시 방위산업은 방위산업이구나' 생각하며,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하기 위해 스크린 앞에 서 있던 선배를 쳐다보았다. 현역 근무를 마친 나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은 질문이었는데, 선배는 순간 당황하는 눈빛을 역력하게 보였고, 난 그 선배가 군 면제자였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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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에게는 거짓으로 얘기하지 못하는 것들이 몇 개 있다. 각본으로 짜인 거짓말이 아니면 반문 하나로 바로 들통날 수 있는 그런 것들. 대표적인 것이 군대 얘기다. 군대에서 축구를 한 얘기로 술자리 테이블이 왁자지껄해도 그 대화에 자칫 잘못 끼어들면 바로 거짓이 들통날 질문이 송곳처럼 찔러온다. 선배도 순간 거짓말을 하려고 해도 예상치 못한 질문에 이미 얼굴 표정이 모든 것을 알려주고 있었기에, 거짓으로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결국 그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우리는 모두 같은 허무함을 느끼며 돌아왔다.


아직도 제조업은 서비스업종에 비해서 여전히 작업복 차림의 남성 비율이 높다. IT, 전자 업종은 젊은 담당자들이 주축인 경우가 많으며 게임, 인터넷 업종의 경유는 담당자들의 나이를 불문하고 캐주얼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화장품, 원료 업종은 여성 담당자가 많으며 자유로워 보이면서도 묘한 긴장감이 있고, 교육업종은 직급이 높은 사람들의 결정이 절대적이며, 언급했던 방위산업은 여전히 군대 같다.

이렇듯 산업별로, 제품별로 그 기업의 컬러가 분명히 다르다. 심지어 같은 회사라 할지라도, 서울 종로에 있는 본사와 지방에 연구소나 공장의 컬러 느낌이 다르다. 사내가 아닌 외부의 고객사 등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해야 하는 사람은 제안하는 내용의 준비뿐만 아니라, 내가 방문하는 곳의 분위기까지 파악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혹은 생각하는 분위기와는 다른 모습을 맞닥뜨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준비해야 한다. 모든 예상 가능한 것들을 준비하는 자세. 그것이 프레젠테이션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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