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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자 Oct 27. 2024

유니짜장 외길인생

재미난 팝업스토어 늘보반점


2024년 9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어느 토요일. 삼각산 밑자락 작은 카페 안에 늘보반점은 조용히 문을 열었다. 재미난학교에서 사용하는 별칭인 늘보에 유니짜장 메뉴를 앞세웠으므로 ‘늘보반점’이라 이름을 지었다.


45년 유니짜장 외길인생을 살고 있는 주인장은 물도 전분도 넣지 않고 그저 뻑뻑한 맛을 추구하며 홍보전단 하나 만들지 않고 야심 차게 손님을 기다린다. 유니짜장 한 가지로는 자신의 요리실력을 뽐낼 수 없음에 고민하다 서비스 품목으로 같이 낼 음식을 고심하기 시작한다. 난자완스가 어떨지? 묻는 그의 말에 ‘현명한’ 그의 아내는 서비스 품목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그렇다면 깐풍만두? 시판 만두에 깐풍기식 양념을 더한 주인장의 시그니처 메뉴이다. 반점을 운영할 요리사라고 하기에는 할 수 있는 요리가짓수가 한 손을 넘지 않는다. 심지어 이미 다섯 손가락 중 세 가지 요리가 나왔다. 이것 아니면 저것. 대체재가 많지 않다.


이곳은 원테이블 예약제로 운영된다. 문어체로 말하자면 오마카세. 구어체로 말하자면 주인장 마음대로이다.


손님들의 예약을 앞두고 메인 요리 외의 것을 생각해 본다. 그래도 입가심할 디저트가 필요한데. 번뜩 람부탄 안에 들은 파인애플을 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 ‘반점’인데 빨간 테이블보가 있어야지. 요리를 놓을 세팅지와 여기저기 붙일 포스터도 그려본다. 치파오를 잠시 생각해 보았으나 바로 엑스 표를 친다. 늘보반점이므로 늘보부인은 서브에 충실하는 걸로. 절대 몸매 때문이 아님을 강조해 본다. 그리고 요리사한테 모자도 씌워줘야지. 잘잘하게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넣어본다.


첫 손님의 예약일이 다가왔다. 장바구니에 넣었던 물건들이 하나하나 집에 도착했다. 요리사 모자를 씌워보고 테이블보를 세탁하고 재스민티를 내리고 파인애플을 품은 람부탄을 한 개 꺼내 먹어본다. 모든 물건을 두 손에 이고 지고 카페로 향했다. 늘보반점 포스터를 붙이고 테이블보를 깔고 그 위에 세팅지를 놓는다. 그동안 카페 안은 짜장 냄새로 가득했다. 재스민차의 향기도 모두 삼키고 간 거대한 짜장 소스 안에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오늘은 3명, 1팀이 예약되어 있다. 어린이 두 명, 어른이 한 명. 일찌감치 깐풍만두가 완성돼 먼저 음식을 내었다. 다행히 청경채도 버섯도 잘 먹는 어린이들 덕에 그릇이 깔끔하게 비워졌다. 안심하기도 잠시. 중요한 유니짜장이 늦어지고 있었다. 짜장면대신 우동면을 선택했지만 물이 마음처럼 금방 끓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렸다 면을 넣고 짜장을 부어 내어 갔다. 면이 다소 불기도 했고 유니짜장 자체가 밥에 더 잘 어울리므로 아쉬움이 조금 남았다.


중간중간 주방장 늘보는 나에게 손님들에게 유니짜장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해주라는 지시와 손님들의 입에 맞는지에 대한 확인, 자신의 주방에서 했으면 훨씬 더 맛있게 잘했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어필을 수없이 했다. 첫 예약팀은 리액션이 얼마나 좋은 지 깜빡하면 진짜 중국요릿집을 차릴 뻔했다. 두 번째 예약팀은 시간이 맞지 않아 배달로 진행했다. 배달은 서빙 담당이 하는 것이 맞다며 나에게 짜장 소스가 담긴 그릇을 안긴 채 주방장은 사라졌다. 도보 5분 거리니까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리고 지금은 3번째 예약팀과 열심히 날짜 조율을 하고 있다.


매해 학부모회에서는 쿠폰을 발행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쿠폰이다. 빵이나 더치커피, 그릭요구르트, 식혜 등 먹거리가 가장 많지만 컴퓨터 고장이나 업그레이드에 대한 도움이나 살구 따기 체험, 와인마시기모임, 포토샵 사진 편집, 독서페이스메이커 등 평소에 교류가 많지 않았던 사람들과도 한 번쯤 진하게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물론 쿠폰발행도 사용신청도 자유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모든 것은 자유다. 올해의 늘보반점이 내년에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해 한해 또 다른 재미난 식구들과의 만남이 분명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해 준 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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