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튀김의 번뇌
“나는 감자튀김으로 할 까봐.”
내 말을 들은 남편이 활짝 웃는다.
아무래도 맥도날드 아저씨 옆은 감자튀김이 있어야 완성형 아니겠는가. 햄버거가 아닌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감자튀김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자기 활동 시간에 맥도날드 아저씨 복장으로 아이들에게 풍선아트 수업을 했다. 그 복장으로 꽤나 아이들과 친해진 남편은 어깨가 으쓱해져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설명회를 한다고 하니 시간이 되는 분들은 참석해 달라는 공지글이 올라왔다. 남편은 풍선을 주문해 달라며 맥도날드 아저씨 복장을 또 한 번 입겠다고 했다. 나는 학교홍보인지 패스트푸드점 홍보인지 분간은 안 가지만 아이들이 좋아해 줄 것이라 믿고 그 옆에 감자튀김 복장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학부모님들이 학교 설명을 들을 때 따로 학교를 체험할 아이들을 위해 펄러비즈와 도안들, 다리미도 함께 챙겼다. 이렇게 부부가 이상한 코스프레를 하며 학교행사에 참여하니 꽤나 적극적인 성격으로 비칠 수 있다. 미리 말해 두자면 내적 갈등이 상당히 심했다. 남편에게는 이런저런 복장을 입으라 권하고 나는 평상복 차림으로 참여한다는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다. 감자튀김복장으로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의 쑥스러움과 나는 뒤로 빠지고 평상복으로 서있는 비겁함을 저울질하다 결국 ‘나도 감튀가 되자’. 고 마음먹었다.
남편에게 입힐 화려한 피에로 복장 찾던 화면 위 손가락은 좀 덜 창피한 감자튀김복장을 찾는 손가락으로 변신했다.
학교설명회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친구들이 왔다. 물론 입학까지 이어지면 좋겠지만 학교의 좋은 분위기와 재미있게 놀다 갔다는 신나는 경험이 아이들의 어딘가 한 구석에 자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 역시 입학 전에는 아무래도 학교의 규모가 작다 보니 학부모일이 많지 않을까?라는 염려가 있었다. 면접 때는 고개를 크게 끄떡이며 마을 속 학교공동체라는 부분에도 공감했지만 낯선 곳에서 모르는 여러 사람과 어울릴 수 있을까? 내 마음속에서 계속 물음표를 던지고 있었다. 입학 전이지만 학부모자격으로 카페에 가입해 여러 글들을 볼 수 있었다. 행사에 도움을 줄 사람을 구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나를 지칭하지 않지만 손을 보태 주면 좋겠다는 글 하나하나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직 이사 전이었고 학교 가까이 산다고 해도 맞벌이라 시간 내는 것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학부모 오리엔테이션을 위한 단톡방이 생기고, 중학생 학부모 모임 카톡방이 만들어지고 또 1학년 카톡방이 만들어졌다. 나는 개인톡은 대화가 끝나면 모두 삭제해 버린다. 가족 단톡방 정도만 남기고 사용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를 보고 간첩이냐 묻곤 한다. (간첩은 텔레그램을 쓰지 않을까 싶지만) 그런 나의 핸드폰에 단톡방이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했다.
어지러웠다.
처음에는 카톡창이나 네이버 카페, 사람들의 대화 속 여기저기서 들리는 단어부터 낯설었다. 열음식, 승급식, 2각산, 4각산, 도서관, 재미난카페 등등. 모두가 선명하게 발음하는 단어들이 나에게는 그저 뿌옇고 흐릿한 음으로 들려 귀 안까지 닿지 않았다.
지내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그렇게 생소할 수가 없었다. 학교일은 많다. 보이는 것이 모두 일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 내가 감자튀김옷을 입고 다른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도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를 안심시켰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학교설명회에는 햄버거와 콜라가 섭외되어 있다.
이 글을 읽고 혹시 맥도날드 완전체를 보시고 싶다면 학교설명회에 꼭 한번 오시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오신 김에 학교 설명도 들으신다면 혹시 우리가 내년에 또는 언젠가 감자튀김복장을 벗고 평상복으로 만나 이야기 할 날이 올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