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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자 Oct 27. 2024

당신의 고민은 안녕하세요

대안학교에 입학은 했습니다만


“완자! 이 쪽지 누구하고 주고받은 거야!”


고등학교 때 우리 반 담임교사는 교실 뒤 쓰레기통을 뒤지며 쪽지 주인잡기에 몰두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오는 장면이지만 나는 방과 후 선생님에게 불려 가 종아리에 회초리를 맞았다. 자비심이 없는 친오빠는 ‘무에 금이 갔다’며 깔깔댔다. (이래서 가족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고들 하는가 보다.)


그 시절 추억할 만한 것이라고는 야간 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었다거나, 수업시간에 친구들과 쪽지를 주고받으며 잡담을 나누던 정도이다. 우리 반 친구 중 한 명은 수업시간에 쪽지를 받으면 그 쪽지를 다른 친구에게 전달해 주지 않았다. 자신이 수업 듣는 데 방해된다는 이유이다. 수업이 끝나면 그 친구 앞에는 여러 개의 쪽지가 쌓여 있었다. 오백 번 맞는 이야기다. 이해한다. 머리로는. 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혀를 세차게 끌끌 찼었다. ‘저런 사회성으로 얼마나 좋은 어른이 되나 보자.’ 생각했었다.


좋은 어른은 모르겠지만 좋은 대학에는 들어갔다고 들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더 힘껏 혀를 끌끌 찼었다. 아직도 어느 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혀를 끌끌 찼던 너는 좋은 어른이 되었나 라는 물음에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러면 좋은 대학에는 들어갔나?라는 질문은 받지 않겠다.)

 

많이들 대안학교 졸업생들에 대해서 “(그렇게 유난 떨며 대안학교까지 보냈는데) 그 아이는 지금 뭐 하는데?”라고 묻는다. ‘뭐 하는데?’라고 쓰고 ‘무슨 직업을 가지고 얼마를 벌고 있는데?’라고 읽는다. 현실세계에서 누군가를 설명하는 것은 대단히 간단하다. 출신학교와 직업을 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우연히 본 인터뷰 중에 대안학교 졸업생은 이렇게 답했다.


“지금은 나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말도 안 되게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데 교육만큼은 제자리도 아닌 뒷걸음질 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요즘 들어서는 특히 개인의 다양성을 꽤나 강조하던데 학교만큼 천편일률적인 집단도 없으니 말이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지만 스마트폰이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된 것이 불과 10년 남짓의 이야기이다. SNS 속 삶은 다들 즐겁고 화려하고 개성 있고 게다가 위트까지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이 보이는 세상 속에서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내 한평생을 관통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세속적 나이로 일단 어른에 속해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도 별다른 기준 없이 흔들흔들거리며 이게 맞나 저게 맞나 얇은 귀를 팔랑거리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공교육에 대한 ‘다소의’ 거부감으로 대안학교에 보내긴 했지만 답이 없는 고민은 계속된다. 선행학습은 오히려 오답풀이가 있다지만 대안학교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아이를 측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스로 알아차리고 길을 찾아가도록 그저 지켜보고 기다리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부모 마음이 조급해지곤 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기다려 주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으니 명확한 시기와 시기별 증상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곤 한다.


신나게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갑자기 명탐정이 되겠다는 엉뚱한 꿈을 이야기하는 중1이면 현실감이 너무 없는 것 아닌가 싶고 그냥 과장님이 되겠다고 하면 너무 현실적이다 싶은 마음이 든다. 이래도 저래도 고민은 끝이 없고 정답은 없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정할 부분이니 부모가 그렇게 고민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지만, 가능하다면 많은 것을 보여주고 경험해주게 하고 싶은 부모의 욕심이 자꾸 튀어나와서 일 것이다.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를 보면 ‘내가 학교 다닐 때 이런 학교가 있었으면 정말 열심히 다녔을 텐데’로 마무리된다. 아마도 어른이 되고 난 후 에야 학생 때의 시간과 경험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일 테다. 


만약 다시 학생이 된다면 나 역시 우리 아이처럼 문제집이라도 한 장 풀어보면 어떻겠냐고 엄마가 이야기하면 갑자기 방청소를 시작하거나 난데없이 졸음이 엄습하는 학생일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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