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살에 친구 만들기
한해 또 한해 지나면서 인간관계를 뒤돌아보면 다양한 분야의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보다는 나와 맞는 사람들 위주로 주변이 채워져 있는 것 같다.
굳이 대하기 껄끄러운 상대에게 맞추기보다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 과의 관계를 좀 더 밀도 있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랄까? 사실 서두가 길었지만 인간관계라는 것은 진심으로 사람을 피곤하게 하기 때문이다. 흔히들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이유가 일이 힘든 경우보다 인간관계가 힘든 경우가 더 많다고들 하지 않던가.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해 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임은 틀림없다.
우리 집 아이는 중학교 1학년부터 재미난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비교적 드문 케이스이다. 학교 규모가 작다 보니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계속 이 학교를 다닌 친구들은 형, 누나, 언니, 오빠, 동생 할 것 없이 서로를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학부모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친하지는 않지만 서로 어느 정도 인지가 되어 있는 상황이다. 우리 집은 아이의 입학과 동시에 타지에서 이사를 온 경우라 입학 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토지감도 없고 학교 분위기도 잘 모르겠고 사람들은 더더욱 파악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아이는 매일 교실에서 마주하는 아이들이 있으니 비교적 빠르게 친구들을 만들어 갔다. 나는 적극적으로 친구를 만드는 타입의 인간형도 아니고 지금 있는 친구들도 만날 시간이 없어 새로운 친구는 늘 벅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재미난학교에 입학하면서 아이는 모든 학원을 끊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당연하지만) 학원 숙제 또는 문제집 풀기를 하며 아이와 나의 싸우는 시간이 사라졌다. 대신 그 시간들은 나에게 생각지도 않은 ‘나만의 시간’이라는 선물로 돌아왔다. 재미난학교 입학 전까지는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밥숟가락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아이의 학원숙제를 체크했고 자기 전까지 아이와의 입씨름이 끊이지 않았었다.
아이의 학교 입학으로 아이의 나 자신 찾기와 동시에 부모 역시 나를 찾는 시간이 만들어진 셈이다.
나는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타이밍에 심지어 중년의 한가운데서 ‘나만의 시간’을 통해 나 자신 찾기에 돌입하게 되었다.
우리 학교가 이렇게 재미있는데 홍보할 길이 없다며 우리도 책 한번 써보면 어떠냐며 ‘비교적’ 가볍게 생각해 글쓰기 모임이 꾸려졌다. 소중한 몇몇을 포섭해 시작했지만 매번 마감 당일까지 헐떡대며 글을 썼다. 마감 3일 전 단체톡방에 올라오는 귀여운 강아지가 종을 울리는 리마인드용 이모티콘은 점점 광견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또 낙서하는 것을 좋아해 참가한 그림모임은 어느새 달력과 굿즈를 만드는 모임으로 변모하여 우아하게 붓질하는 모습을 상상했던 나는 그 역시 마감에 맞춰 그림을 그려내느라 머리를 쥐어뜯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렇게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취미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스트레스는 지금까지 느낀 인간관계의 스트레스와는 분명 달랐다. 아마도 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새로운 도전들이나 경험들이 내 마음을 둥글게 다듬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귀찮고 힘들게 느껴졌던 낯선 것들에 대해서 조금은 열린 마음을 가지고 다가갈 수 있게 된 것 아닌가 싶다.
‘정들면 고향’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이곳에서 좋은 취미 그리고 그 취미를 같이 할 좋은 친구들도 얻었으니 오늘도 나는 나의 새로운 고향에서 또 다른 새로운 친구를 찾아 기웃거려 본다.